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하종강 칼럼] 4월이 가고 5월이 오면 생각나는 사람

등록 2016-04-26 21:14

오는 4월30일은 화물연대 노조 광주1지회 지회장이었던 박종태 열사의 7주기 기일이다. ‘건당 운송료 30원 인상’이라는 구두 합의를 이행하라고 회사에 요구하다가 해고된 택배기사들의 복직을 위해 활동하다가 체포영장이 발부됐던 박종태 열사의 시신이 발견된 날은 5월3일이었다. 5~6월 내내 화물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졌다. 장례식은 숨진 지 52일이 지나서야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마당에서 전국노동자장으로 치러졌고, 광주 망월동 구묘역에 안장됐다. 많은 사람들이 박종태 열사 사건을 ‘5월의 죽음’과 함께 기억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다는 대한민국에서 택배기사들과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정부의 비정규직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와 기업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아예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차주’ 곧 개인사업자이지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건 당시에도 회사 쪽은 노사교섭 합의서에 노동자 쪽 교섭 주체를 ‘화물연대’로 표기하는 것을 끝내 거부했다. 고육지책으로 ‘대한통운 광주지사 택배분회 분회장’ 명의로 서명했다. 노동자들은 “그래도 ‘택배분회 분회장’이라고 명시했으니 화물연대 광주지부 소속이라는 점을 회사가 인정한 셈”이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수업을 할 때, 학습지 교사와 함께 택배기사를 특수고용 비정규직의 대표적 예로 설명한다. 박종태 열사 관련 자료도 함께 살펴본다. 정갈한 문장으로 써내려간 유서를 읽다가 학생들은 마지막 문장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올림’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한다. 생전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맞아, 박종태 열사는 우리처럼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었어, 여느 학생들처럼 동아리 활동을 하고, 풍물도 치고, 글도 쓰고, 가족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보통 사람이었어, 비정규직 문제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 모두의 문제인 거야….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사진이 있다. 조문 갔을 때, 소복을 입은 부인과 어느 남자 단 두 사람만 지키고 있던 빈소가 너무 외롭고 쓸쓸해 보였노라고…. “아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 말밖에는 할 수 없었노라고…. 정말로 그 말만 하고 서둘러 나오다 복도 끝에서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빈소 사진을 보여주며 목이 메기도 한다.

택배회사 상표가 붙은 차량을 운전하고 그 회사 제복을 입고 일하는 기사들이 택배회사가 고용한 직원이 아니라 건당 수수료를 받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일하는 형태가 택배회사에 고용된 노동자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운송시간과 운송구간 등 업무 전 과정을 회사가 지휘·감독하는 등 실제 일하는 것은 노동자와 다름없는데 형식만 개인사업자일 뿐이다. 이런 경우에는 노동자로 보는 것이 순리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방향이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주유소와 편의점 사장들의 노동조합도 합법적으로 인정했다.

지난 주말, 박종태 열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부산 지역에서 조촐하게 모였다. 행사가 끝난 뒤, 뒤풀이 자리에서 그 빈소 사진 얘기를 꺼냈을 때, 식탁 건너편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말했다. “그때, 제가 거기 있었습니다. 정말로 종태 부인과 저 두 사람밖에 없었을 때, 하 선생님이 들어오셨어요. 제가 종태하고 제일 친한 친구였거든요….” 말끝을 미처 맺지 못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지난 총선 결과 모처럼 여소야대 국회가 됐다. 국회에 제출돼 있는 노동시장 구조 개혁 법안들 중 파견 허용 업종을 대폭 확대하는 법안이 어쩌면 통과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전망했더니, 사람들이 “순진하시군요”라고 놀린다. 그래도 그 순진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싶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 특수고용 비정규직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법안 하나만이라도 통과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여소야대 국회이니까….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