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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새로운 공휴일

등록 2016-04-20 21:49

글을 쓰기 전, 예열 과정이 길어지는 것만 같아, 새로운 공휴일을 만들었다. 정기적인 스케줄이 없는 토요일부터 화요일까지를 공휴일로 지정하고, 랜선을 뽑기로 했다. 글을 쓰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영락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던 버릇을 고쳐야겠다 마음먹은 것이다. 핸드폰도 껐다. 집 안을 서성이며 잡념에 잡념을 보태는 막간들을 거의 지배했던 핸드폰을 서랍 속에 넣고 나니, 숨어 있었던 보물들이 쏟아지듯 시간이 남아돌았다. 사두고 읽지 못한 책을 읽으며, 인터넷이 아니라 책으로 예열을 했다. 더 먼 곳으로 갈 수 있었다. <불가능>을 읽으면서 프랑스의 60년대를 살았던 조르주 바타유를 만나고 돌아왔다. 미국의 역사학자 윌리엄 레디가 집필한 <감정의 항해>를 읽으면서는 18세기와 19세기를 지배했던 사회적 감정들을 다시 만났다. 책을 덮고서, 올해 들어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원고를 썼다. 일주일에 절반을 연휴로 보내면서, 다음주에 읽을 책도 미리 챙겨 책상 위에 얹어두었다. 벽에서부터 뽑아져 나온 랜선이 방바닥에 맥없이 놓여 있었다. 새로운 잎을 말아올리는 화분들이 전보다 더 꼿꼿이 반짝거렸다. 몹쓸 곳을 헤매다 홀연히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핸드폰을 서랍에서 꺼내어 전원을 켜자, 하필이면 반가운 연락들이 차곡차곡 밀려들었다. 늦은 답장을 하는 게 미안했지만, 내가 보낸 좋은 시간들 덕분에 전보다 더 씩씩하고 다정하게 답장을 보냈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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