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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토요일의 광화문

등록 2016-04-18 21:40

토요일에는 비가 내렸다. 저녁에는 더 세차게 내렸다. 광화문광장에는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쓴 사람들이 만 명 넘게 모여 있었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서, 나도 비를 맞고 서 있었다. 분향소에서, 묵념을 하고 기억하고 싶은 그 얼굴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두 시간 남짓을 줄을 서서 기다리자니, 신발이 다 젖어 발이 시렸다. 모두의 신발이 그만큼 젖어 있었지만, 줄을 서다 포기한 사람은 없었다. 줄이 길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처음 해보았던 것 같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2년이 흘렀다. ‘2년이 흘렀다’라는 말 앞에 ‘벌써’라는 수식어를 붙였다가 지웠다. ‘흘렀다’라는 서술어도 지워야 옳을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밝혀진 것 없이 2년 전 4월16일에 진실은 멈춰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1주기 때와 달리 차벽이 없었다. 추모 행사의 마지막에는 다 함께 춤을 추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를 다 함께 불렀다. 행사가 끝나자 스태프들은 설치물들을 정리하느라 비를 맞고 뛰어다녔고, 사람들은 허리를 굽혀 비에 젖은 쓰레기들을 주워 자리를 정리했다. 빗방울은 가벼워졌고 빗소리도 잦아들었다. 우리는 비에 젖어 있었지만 우리의 표정은 씩씩했다. ‘우리’라는 주어에서, 인간이 지녔을 힘과 용기를 목격하고 집에 돌아온 날이었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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