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3일 치러지는 20대 총선은 집권 3년을 넘긴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야권 분열로 초점이 다소 흐트러지고 있긴 하지만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본래 선거 취지가 훼손돼선 안 된다.
경제심판론은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 최장의 경기침체 속에서 소득 불평등이 고착되고 가계·기업·정부의 빚이 급증하는 현실은 정책 실패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커지는 사회·정치적 갈등 또한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집권세력의 의도적이고 편협한 권력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에 대한 심판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현 정권의 남은 임기 동안 모든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와 겹치면서 나라 전체가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심판에는 당연히 외교·안보·통일 이슈도 포함돼야 한다. 사실 박근혜 정부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가장 크게 실패했다. 북한 핵 문제는 최악의 수준으로 나빠졌고 한반도·동북아 정세는 어느 때보다 불안하다. 박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내세운 3대 대외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이제 그런 게 있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정도가 됐다.
가장 심각한 것은 역시 북한 관련 사안이다. 박 대통령은 모든 책임을 북쪽에 떠넘기지만, 이전 정권과 비교하더라도 실패는 두드러진다. 북쪽의 연이은 핵실험을 막지 못한 것은 물론 공공연하게 상대 정권의 붕괴와 (핵)전쟁을 거론하는 상태까지 왔다. 이제까지 정부가 보여준 거라곤 상황 악화를 기정사실로 하면서 군사주의를 강화한 것뿐이다. 이제 냉전 때와 같은 ‘공멸의 대결 구조’가 만들어져 우리 사회 전체가 그 영향을 받는다. 평화의 기초까지 허문 정부가 평화통일을 되뇌는 모습은 코미디를 넘어 비극적이기까지 하다.
이전 정권들이 긴 고민 끝에 도출한 균형외교라는 틀을 벗어버리고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하려는 것 또한 중대한 문제다. 지난해 가이드라인(방위협력지침) 개정 등을 통해 군사·안보 일체화를 강화한 미국과 일본은 사실상의 삼각동맹을 우리나라에 공공연하게 압박한다. 이른바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 강화는 우리 외교·안보의 자율성을 크게 위축시키고 동북아의 갈등을 키울 수밖에 없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밀어붙이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정부가 갈수록 깊숙이 발을 담그는 것은 그 양상의 하나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의 한반도 배치까지 이뤄진다면 우리 선택지는 그야말로 미-일 동맹에 확실하게 매달리는 것밖에 남지 않는다. 이런 상황 자체가 엄청난 실패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본의 과거사 문제가 실종되는 것 역시 그 흐름 속에 있다. 미국과 일본이 짜놓은 틀에 충실하게 들어가다 보니 두 나라가 싫어하는 얘기는 할 수 없게 되는 구도다. 이것을 옳은 선택이라고 한다면 일본에 우리의 운명을 맡긴 일제 시절 친일파의 논리와 다를 게 없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미래지향적인 협력’이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과거 친일파도 비슷한 표현을 썼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전면적으로 파탄했다. 북한의 위협이라는 가림막으로 국민의 눈을 막고 있을 뿐이다. 당장 전면적인 리셋(재설정)을 하지 않는다면 그 모순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선거는 이를 바로잡을 좋은 기회다. 지금 여권과 몇몇 언론은 북한 위협만을 강조하는 북풍몰이에 몰두하고, 종북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야권은 아예 안보 이슈에 대한 언급을 피한다. 둘 다 정상이 아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라도 야권이 선거에서 이긴다면 정부의 외교·안보 실패를 일부라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지금 모습은 정도가 아니다. 어느 선거든 국민에게 충분한 논거를 제시하고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김지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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