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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철우의 과학의 숲] ‘과학의 날’, 이런 상상

등록 2016-03-31 20:17수정 2016-03-31 21:00

과학의 날인 4월21일이 있는 이달은 과학의 달이다. 곳곳에서 다채로운 과학 문화 행사가 펼쳐진다. 위키백과의 한 구절이 과학의 달에 낯익은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매년 4월21일에 각종 학교 및 관련 단체에서 물로켓, 에어로켓, 과학 글짓기, 과학 그리기, 과학상자, 로봇 만들기 등 여러가지 행사를 거행한다.” 학부모들은 과학의 달에 맞춘 과제물을 아이들과 함께 해내느라 평소 둔감해진 어릴 적의 과학적 호기심과 상상력을 한껏 되살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과학 취재 기자인 내게 과학의 날은 정부 주관 기념식이 열리고 유공 과학기술인이 훈포장을 받는 날로도 기억된다. 그런데 과학의 날이 왜 4월21일일까? 1967년 4월21일 정부 중앙행정기관으로서 과학기술처가 출범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 과학의 날인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왜 정부 부처 출범일이 국민적 기념일이 되었을까? 과학과 잘 어울리지 않는 기원처럼 여겨졌다. 오랜 과학 역사는 자유롭고도 다양한 창의력이 강조되는 전통을 보여주는데, 정부 기념일이 과학 기념일로 이어진다는 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올해 과학의 달엔 정부 주도 과학의 모습이 더욱 짙게 드리울 듯하다. ‘과학기술 50년’의 해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키스트)과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가 세워진 지 50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 정부는 ‘과학기술 50년 대토론회’를 열고 <과학기술 50년사>도 발간한다. 50년을 맞아 키스트 안에는 지난달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졌다. 키스트 원장은 <사이언스>에 실은 기고문에서 한국이 이룬 50년의 ‘기적’을 넘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 정부 주도 과학의 성공을 시작한 50년 전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은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정책으로 이어진다.

과학기술 발전의 경로가 하나만은 아닐 터이다. 일제의 강점과 한국전쟁을 겪은 나라에서 경제뿐 아니라 과학기술에서도 기적과 같은 압축성장을 이뤄낸 것은, 여러 성장통이 남은 과제이긴 하지만,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하지만 자유와 도전이 중시되는 과학의 길에서 정부 계도가 얼마나 더 힘이 될지는 사실 회의적이다. 국제 지표들에 나타나듯이 한국 과학자 사회는 상당한 정도로 성장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부 주도나 계도의 과학기술만이 상상되니 어색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정치의 계절에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보자. 과학의 날은 과학기술인이 주인이 되는 날이면 좋겠다. 과학기술인들이 나서서 생각과 문화를 우리 사회와 유쾌하게 나누는 날이면 좋겠다. 과학의 날에는 과학자들이 자기 목소리로 말하고 또한 시민의 목소리와 소통하면 좋겠다. 연구 현장의 목소리로서, 일선 연구원들이 자부심을 말하는 날이면 좋겠다.

 오철우 삶과행복팀 기자
오철우 삶과행복팀 기자
포상의 갑을관계도 바꿔보자. 과학의 날에는 과학자 사회가 심사숙고 끝에 우리 사회와 연구 현장에 유익한 과학기술 정책을 편 정책결정자를 찾아 상을 주면 좋겠다. 물론 엉터리 정책을 시행해 세금을 낭비하고 자유로운 연구 환경마저 그르친 정책결정자는 따끔하게 비판하면 좋겠다. 소수 과학기술인의 묻지마 정계 진출을 돕자는 이익단체 같은 목소리를 높일 게 아니라, 좋은 정치인을 길러줄 만한 과학자 사회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날이면 좋겠다. 헌법 제127조는 과학기술을 국민경제의 도구로 강조하지만, 그 너머에 과학기술이 우리 생활과 문화로서 풍성하게 토론되는 과학의 날이면 좋겠다. 우리 과학기술이 50년 전 시작됐고 과학의 날이 부처 출범에서 비롯했음을 자각하는 날, 이런 상상을 해본다.

오철우 삶과행복팀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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