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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로봇의 시대 : 헛다리 짚는 경제 전문가들 / 딘 베이커

등록 2016-03-27 18:35수정 2016-03-27 19:35

워싱턴 정가에서 벌어지는 정책 토론 과정에서 단골로 나오는 우려가 있다. 로봇이나 기술이 발전하면 수천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다수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뚜렷한 근거가 없고, 주요 경제정책 논의가 그런 우려와는 정반대로 흐른다는 점이 흥미롭다. 우리는 로봇 기술이 발전하면 단위시간당 생산성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여긴다. 사람이 하던 일을 로봇이 하니 그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생산성 향상은 매우 더디다. 최근 5년간 미국의 생산성은 평균 0.4%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5년을 단위로 한 생산성 증가율에서 가장 낮은 증가 폭이다. 1995~2005년 생산성 증가율은 3%에 육박했다. 이는 2차대전 이후 황금시기로 불렸던 1947~73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기간 동안 생산성 향상 붐을 주도할 수 있는 로봇 분야의 투자가 증가했다는 증거도 없다. 정보처리장비 분야 투자는 5%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론 생산성 향상 붐의 기초를 놓았다고 할 수 없다.

로봇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잠식할 것’이라는 근거없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동안, 미국의 경제정책은 이런 속설과는 180도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정책은 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연준은 가장 최근인 16일 회의에서는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엔 금리를 전격 인상했고, 올해도 인상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연준은 당시 금리를 인상하면서 ‘노동력 부족’을 주요 근거로 내세웠다. 각종 노동수요가 증가하면 임금이 오르게 되고 이는 물가상승에 영향을 미쳐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는 논리였다. 연준은 금리를 인상해야 소비와 투자, 주택 건설이 줄어들면서 노동력 부족 사태를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정부 지출과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지금 경제상황은 노동력 부족 사태 탓에 지나친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금리인상과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과도한 재정적자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은퇴자는 날로 늘어나는 반면 노동가능 인구는 갈수록 부족해진다’는 이른바 ‘인구 재앙론’을 접하곤 한다. 그래서 주요 정치인들은 은퇴자의 여러 혜택을 줄여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로봇이 모든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우려와 ‘장차 노동력 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는 서로 모순된다. 정치인들 중에는 이런 기초적인 모순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기록적인 홍수와 극심한 가뭄을 한날한시에 맞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과 똑같다. 현재 정책 논쟁의 수준이 이런 정도다.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우리는 중도를 선택해야 한다. 급속한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들에게 (일자리)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은 설득력이 약하다. 전후 황금시기 우리는 가파른 생산성 향상을 경험했다. 당시 낮은 실업률과 빠른 임금상승 요인이 겹치면서 노동자들은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나눠 향유했다. 반대로 노동력 부족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 역시 여러 측면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다. 미 노동시장은 여전히 대침체기의 충격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노동력의 중추인 25~54살의 노동인구 고용률은 대침체기 이전보다 3%가량 낮다. 현 노동시장 현실을 고려하면 연준이 금리를 올리거나 의회가 현재도 양호한 수준인 재정적자 폭을 줄일 하등의 이유가 없는 셈이다. 인구통계학적인 큰 그림을 보면, 우리는 지난 70년 동안 비슷한 패턴을 봐왔다. 수십년간 인구는 노령화되어 왔다. 하지만 인구 노령화로 인한 충격은 낮은 생산성 탓에 충분히 상쇄되고 남을 것이다. 요컨대 현실에서 풀지 못할 경제적인 문제는 없다. 더 큰 문제는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 엘리트들이다.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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