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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처신

등록 2016-03-23 19:25수정 2016-03-23 19:57

메뉴를 바라본다. “뭐 먹을까요?” 마주앉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물어본다. “뭐 먹을래요?” 하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두 가지 음식을 둘이서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암묵적인 약속을 한 듯하다. 자신이 먹고 싶은 걸 생각하고 있다기보다 저 사람이 무얼 먹고 싶을까를 생각한다. 두 사람은 지금 무얼 먹느냐는 중요하지가 않다. 꼭 먹고 싶은 게 딱히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끼 메뉴 정도는 상대에게 양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식 두 가지를 협력해서 선택한다. 단, 두 가지 메뉴가 서로 맛의 균형을 갖추는 데에 더 신경을 써서 결정한다. 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윗사람이라면 상황은 명백하다. 윗사람은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선뜻 고르지 않는다. 그것은 얼마간 노골적이며 매너 또한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랫사람이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고를 리는 더더욱 없다. 윗사람이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일지를 예민한 촉으로 헤아려 골라야만 한다. 두 사람 앞에 음식이 놓인다. 음식을 먹으며, 두 사람은 긴히 나누어야 할 용건을 주고받는다. 음식을 마주하고 앉았으니, 유쾌하게 그 이야기가 마무리될 수는 있다. 하지만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고는 볼 수 없다. 오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옆 테이블을 관찰한 모습이 이러했다.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미세하고도 세세하게 처신을 해야 하는 풍경. 조금 낯선 누군가와 함께 식당에 앉아 있던 내 모습들이 하나하나 스쳐갔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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