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런 유의 다른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클라이맥스에서 인쇄소 장면이 나왔다. 반으로 접힌 신문 1면이 착착착 인쇄되고 착착착 쌓여가는 장면. 갈등은 해갈되었고, 봉인된 불의가 만천하에 드러날 차례임을 알려주는 장면. 마침내 후련해지고 통쾌해지는 장면. 벅차오르는 정의감에, 영화 보는 맛을 드높여주는 장면. 나는 이 장면에서 망연해지고 말았다. 후련함이 찾아오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내 표정을 살피는 어린 후배에게 그 장면에서 기분이 좋았냐고 물어보았다. 짜릿했죠, 후배는 대답했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혐오감과 수치심이 서로 뒤엉켜, 착잡했다고 고백했다. 정의로움에 대한 순결한 희열을 만끽할 만큼, 이제는 나 자신이 순결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느껴버리고 말았다. 순결하게 짜릿함을 누린 어린 후배가 잠시나마 부러웠고, 나 자신의 흉물스러움을 어쩌지 못한 채 집에 돌아왔다. 이것은 죄의식이다. 인쇄 장면 바로 전, 영화는 취재의 속도를 잠시 늦췄다. 사제들이 아니라 그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자고 데스크는 기자들을 설득한다. 진작에 이 사건을 특종으로 다루지 못한 결탁들과 비굴함들을 골고루 보여준다. 시스템 안팎으로 연결된 묵인의 카테고리 안에는 이 특종을 진두지휘해온 기자의 옛날까지 포함돼 있다. 그는 20년 전 이 스캔들을 소홀하게 기사화한 적이 있었다. 제 손으로 썼지만, 기억도 나지 않는 사건이었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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