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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독거

등록 2016-03-16 19:03수정 2016-03-16 19:47

“압력밥솥에서 압력이 빠지는 소리를 베토벤 5번 교향곡 운명만큼 좋아한다 그 소리는 흩어진 식구들을 부르는 음악 같다”. 안현미의 시 ‘독거’의 한 구절이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압력밥솥에 밥을 안치고, 음소거가 된 듯한 혼자만의 방에서 오도카니 밥이 익기를 기다리는 시인을 생각해본다. 밥이 익어갈 때 뿜어대는 압력밥솥의 소리를 베토벤의 ‘운명’과 닮았다고 감지한, 시의 순간을 생각해본다. 혼자 있지 않았더라면 잘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를 소리가 저렇게나 마침맞은 문장을 낳은 것에 대해 생각을 하는 것이다. 최근에 내가 알던 한 아이는 집을 나와 독립을 했다. 그 아이의 찬장엔 친구들이 놀러 오면 대접해줄 차 세트가 가득했다. 한켠에 책상 하나, 한켠에 이부자리가 깔린 것이 전부인 작고 허름한 방이지만, 그 아이는 친구들을 초대해 쪼그리고 마주앉아 차를 마실 궁리부터 하는 것이다. 이제 친구를 만나느라 카페에 갈 일이 줄어들겠고, 한 시간 시급 알바의 금쪽같은 돈을 아낄 수 있을 것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엄마 미소를 지었다. 사는 법을 아는구나 싶어서 존경스러웠다. 때론, 친구를 재워주며 잠옷 차림으로 무릎을 가까이하고 마주앉아 밤새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겠지. 아침엔 눈곱 낀 얼굴로 친구에게 손수 지은 밥을 차려줄 수도 있겠지. 혼자 사는 작은 방에 깃든 것들이 누런 벽지와 곰팡이와 무력감과 고독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 두 사람에게 배운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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