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공중목욕탕은 물이 더럽기로 소문이 나 있다. 그래서 목욕을 하러 가고 싶을 때 나는 주로 새벽 시간을 이용한다. 공지된 청소시간이 종료될 시각에 집을 나선다. 하지만 청소가 마무리된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은 없다. 목욕탕을 가로지르고 전선을 드리운 채로 청소기계가 굉음을 내며 타일을 닦고 있다. 물론 탕 속에 새 물은 아직 채워지지 않은 상태다. 오늘 새벽도 그랬다. 청소부는 단 한 명이었다. 드넓고 으리으리한 목욕탕을 둘러보았다. 저 사람 혼자서 청소를 다 해낸다는 게 가능하지 않아 보였다. 시간이 흐르자 청소는 끝이 났고 청소부는 알몸으로 다시 들어와 샤워를 했다. 웅크린 채로 가만히 앉아서, 샤워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을 비를 맞듯 한참 동안 맞고 있었다. 고단함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이만큼은 아니지만, 고단함이 역력한 모습을 내가 가장 자주 목격하는 장소는 공공도서관이다. 사서들은 왜 이리도 불친절하고 하나같이 뚱한 표정을 하고 있는지에 불만을 품다가도, 도서관에서 몇 시간을 소일하고 있다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가 있다. 일손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자기 일에 대한 기쁨이라든가 이용자에 대한 친절한 응대법 같은 것은 개인의 덕성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일터의 환경으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소소한 장소에서의, 소소한 보람도 친절도 기대할 수가 없는 우리의 환경. 소소한 행복이 너무 요원하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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