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어제 시작됐다. 올해는 여느 해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훈련’이 자칫 ‘실제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들 정도다. 단지 훈련 규모가 사상 최대여서만은 아니다. 이번 기회에 북핵 문제를 끝장내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서슬 퍼런 결기가 군사훈련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면 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래서 성공한 경우도 있고, 실패한 사례도 있었지만 결코 스스로 거둬들이지는 않았다. 유승민 의원 퇴출이 그렇고, 최근 테러방지법 통과도 그랬다. 이제 사이버테러방지법 통과까지 압박하고 있다. 남북 관계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해왔다.
그는 얼마 전 김정은 정권의 ‘폭정’을 중지시키겠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아무리 북한이 자신의 뜻대로 따라오지 않는다고 해도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할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극단적 표현을 쓴 것은 지금이 북한을 굴복시켜 핵무기를 포기하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상 북한을 봉쇄할 정도의 강력한 유엔 대북 제재가 시작됐고, 이번 한-미 훈련에는 북한을 초토화하고도 남을 정도의 최첨단 살상무기가 한반도 주변에 배치된다. 개성공단 폐쇄라는 극약 처방까지 내린 마당에 이런 호기를 놓치면 자신이 지금까지 밀어붙인 대북 정책 기조가 허물어질지 모른다는 조바심도 들었을 것이다.
성공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핵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맞는 처방을 해야 하는데 핵심을 비껴간 대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북핵 접근법은 마치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 격이다. 발바닥의 가려움은 해소되지 않고 신을 긁는 자기 손톱만 해어져 피투성이가 될 뿐이다.
알다시피 북한한테 핵무기는 곧 생존 그 자체다. 생존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 개인이건 국가건 생존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게 돼 있다. 따라서 북한에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하려면 다른 방법으로 생존을 보장해줘야 한다. 북한 핵무기 포기와 체제 보장 약속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대놓고 김정은 체제를 붕괴시키겠다고 하고 있다. 이래 가지고는 북핵 문제는 해결은커녕 더욱 악화할 뿐이다.
박 대통령의 자기중심적 사고 체계는 더 문제다. 국가지도자로서 확고한 신념을 갖는 건 미덕이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그에 따라 움직여주는 건 아니다. 청와대 비서나 장관들이야 책상을 치면 바짝 엎드리겠지만 그 너머 바깥 현실은 전혀 다르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복잡한 지정학적 이해가 얽혀 있는 북핵 문제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데도 그는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을 파헤치려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나 자신을 ‘배신한’ 유승민 의원을 찍어냈듯이 김정은도 찍어내려 하고 있다. 사적인 감정과 공적인 역할을 구분하지 못한 채 협애한 자기 세계에 갇혀 있다.
미국과 중국 등은 벌써 다른 출구를 모색 중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체제 보장을 위한 평화협정 체결을 동시에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한-미 군사훈련이 끝나는 4월 이후에는 이런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다. 세상은 박 대통령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시나리오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할까. 가장 바람직하기는 미국, 중국 등과 공조해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 체결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비록 힘들더라도 그 길이 최선이다.
박 대통령이 과연 그런 길로 가려 할까. 기대하기 어렵다. 끝장을 볼 때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한을 압박할 것이다. 북한이 굴복해 두 손 들고 나온다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군사적 제재라는 마지막 수단까지 검토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번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실제 상황’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는 건 지금까지 매사를 무모하게 밀어붙여온 박 대통령의 성정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훈련은 훈련으로 끝나야 한다.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
정석구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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