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여섯 명과 글작가 일곱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글작가가 한 명 더 많아진 이유는 내가 모호하게 ‘깍두기’로 끼었기 때문이다. 홍대 앞 작은 강당에서 열린 <섬과 섬을 잇다 2> 북토크 행사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헌정사에 전무후무한 필리버스터 열풍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두 쏠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명 인사를 사회자로 모실 수도 있었지만 주최 측에서는 특별히 노동자 두 명에게 사회를 부탁했다. 2822일 동안의 길거리 농성을 보기 드물게 승리로 장식하고 복직한 재능교육의 여성 노동자와 민주노조를 대표하는 금속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6년째 이어가고 있는 유성기업의 남성 노동자가 사이좋게 사회를 맡았다.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에 “재능교육 ‘교사’ 아무개입니다”라고 특히 ‘교사’라는 단어에 힘주어 표현하는 말을 들으며 가슴이 울컥했다. 자신을 ‘교사’라고 다시 소개할 수 있을 때까지 8년 세월 동안 겪어야 했던 사연들은 소설책 몇 권을 족히 채우고도 남을 만한 분량이었을 것이다.
유성기업 노동자는 “열심히 싸워 보려고 했는데 한진중공업 투쟁 때문에 우리 싸움이 묻혀 버렸어요. 한진중공업 투쟁이 마무리되고 우리가 또 싸움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쌍용차 사건이 터지면서 우리 투쟁이 또 묻혀 버렸습니다”라는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웃는 표정이었고 듣는 청중들도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가슴 아픈 농담을 들으며 가슴 한쪽이 서늘해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섬과 섬을 잇다>를 처음 기획한 뜻 자체가 그랬다.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투(장기투쟁)’들은 마치 섬처럼 고립된 채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섬과 섬을 잇다> 1권에서 다룬 사건들은 모두 5년을 넘긴 싸움들이었다. 사회를 맡은 유성기업 노동자가 “섬섬 1권을 만들 때는 우리 투쟁기간이 5년이 채 안 됐을 때여서 감히 끼지도 못했어요”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이 말은 우리 사회에서 이제 5년 정도 싸워가지고는 사람들 관심의 대상이 되지도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립된 섬처럼 외롭게 진행되는 싸움들을 서로서로 이어보자는 것이 몇 년 전 만화가 유승하와 르포작가 이선옥이 처음 <섬과 섬을 잇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의도였다.
내가 ‘깍두기’로 낀 이유는 유성기업 사건에 슬쩍 숟가락만 얹었기 때문이다. 만화가 최규석은 웹툰 <송곳>을 연재하고 있는 중이어서 다른 일에 손을 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최규석에게 노동대학 강의를 부탁하면서 유성기업 사건 시나리오를 써주겠노라고 일종의 ‘거래’를 했다. 결국 시나리오를 쓰기는 했지만 나중에 최규석 작가가 그린 만화를 보니 내가 쓴 시나리오 내용이 반영된 분량은 매우 적었다. 사건을 바라보는 눈이 서로 달랐던 것이다. 나는 같은 일가친척들이 민주노조와 어용노조로 나뉘어 가입해 있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가족관계’에 주목했고 최규석은 민주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자행되는 주도면밀한 ‘권력관계’에 주목했다. 그래서 만화 제목부터가 <플랜>이다. 북토크에서 나는 마이크를 넘기며 “내가 쓴 시나리오가 묵살당한 이유부터 말해 달라”고 화두를 열었고 최규석은 이렇게 설명했다.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보니까 자신감에 차 있더군요. 언제쯤 조합원들이 탈퇴하기 시작할 것인지, 언제쯤 어용노조를 설립할 수 있을 것인지, 언제쯤 민주노조가 와해될 것인지…. 중요한 점은 그대로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민주노조는 아직 건재하고, 싸움은 6년째 계속되고, 노조 파괴를 기획했던 사람은 노무사 자격이 정지되고…. 저는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권력의 오만한 탄압에 몇 년째 맞서고 있는 놀라운 투쟁들, 광화문 장애인 농성장, 전주지역 버스노조, 스타케미칼지회, 기륭전자분회, 유성기업지회 등에 대한 기록이 13명 만화가들과 글작가들의 손을 거쳐 <섬과 섬을 잇다 2>에 오롯이 실려 있다. 그 책을 한번쯤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외로운 섬과 섬을 잇는 일이 된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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