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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북한, 공존이냐 궤멸이냐

등록 2016-02-15 20:00수정 2016-02-15 21:59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북한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남북관계는 끝없는 긴장과 분쟁 속에서 소모적인 논란만 되풀이될 뿐이다. 자칫하면 그 와중에 한반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을 공존의 대상으로 보는가, 아니면 궤멸의 대상으로 보는가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 뿌리 깊은 논쟁이다. 해방 이후 6·25전쟁을 거치면서 고착된 이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대체로 보수우익세력은 북한 체제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을, 진보세력은 북한과의 공존과 대화를 통한 평화통일을 지향해 왔다.

이명박 정부의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나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도 겉으로는 평화통일을 내세우지만, 북한붕괴론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도발을 일삼는 북한이 있는데 이를 그대로 둬야 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모든 게 상대적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은 북한이 고분고분해서 화해와 협력이 이뤄졌는가.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남북 관계는 극과 극을 달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북한이 체제 유지 차원에서 핵과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는 말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이를 뒤집어 보면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시켜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겠다’는 것과 같다. 새누리당이나 보수 인사들이 공공연하게 ‘김정은 제거’나 ‘북한 내부 변화를 통한 흡수통일’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북한붕괴론에 경도된 보수정권 8년을 지나면서 남북 관계는 사실상 끝장났다.

개성공단 폐쇄도 북한붕괴론자 시각에서 보면 불가피한 조처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피해를 줄이기보다 북한에 도움이 되는 돈줄을 끊는 게 더 시급하고 중요한 목표다. 수조원에 이르는 우리 기업의 피해 규모와 수천억원에 이르는 북한 유입 금액을 비교하는 것은 이들 입장에선 별 의미가 없다. 더욱이 개성공단은 혹시 있을지 모를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 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종사자들이 북한에 의해 인질로 잡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개성공단 폐쇄를 서둘렀는지 모른다.

북한붕괴론자들은 필연적으로 대화나 협상보다 북한에 대한 견제와 압박을 우선시한다. 경제 제재뿐 아니라 무력시위, 나아가 전쟁도 불사한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핵무장론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을 끝까지 밀어붙여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게 아니라 이번 기회에 완전히 궤멸시키겠다는 의도가 더 짙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달 초 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 키리졸브·독수리 연합훈련이 시작된다. 두 달여 동안 진행될 이 훈련에는 핵추진 항공모함 등 미국의 최첨단 무기가 대거 동원될 것이라고 한다. 북한의 위협을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북한에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다. 단지 위협으로만 끝나면 다행이지만 전쟁 불사론을 공공연히 외치는 상황에서 ‘훈련’이 국지적인 ‘무력충돌’로 번질 수도 있다. 보수세력들에는 호기일지 모르지만, 한민족 전체로는 재앙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남북은 화해와 협력의 길을 걸었다. 그 이후 보수정권 8년 만에 남북관계는 파탄 났다. 진보정권 때나 보수정권 때나 북한은 큰 변화가 없었다. 객관적인 현실이고 결과이다. 결국 북한 체제를 공존이 아닌 궤멸의 대상으로 보는 보수우익세력의 북한관이 변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의 파탄은 예정돼 있었던 셈이다.

정석구 편집인
정석구 편집인
박근혜 정부는 지금 제동장치 없는 자동차처럼 급가속하고 있다. 강하게 밀어붙이면 북한이 손들고 나오거나 아니면 북한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신념에 가득 차 있는 듯 보인다. 그렇다고 의도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한숨 멈추고 한민족의 미래와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을 되돌아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남북 모두 공멸이다.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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