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시작된 티브이엔(tvN) 드라마 <시그널>의 흥행몰이가 한창이다. 나 역시 요즘 <시그널>에 빠져 산다. <시그널>은 현재의 경찰청 ‘장기미제전담팀’의 프로파일러 박해영 경위(이제훈, 2015년)가 과거의 형사기동대 이재한 형사(조진웅, 1989~2000년)와 무전을 나누면서 오래된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구도로 짜여 있다. 과거의 간절한 신호로 연결된 오후 11시23분부터 1분 남짓의 무전 대화를 매개로 펼쳐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계속해서 ‘과거’가 ‘현재진행형’임을 각인시킨다.
“과거는 되돌릴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지난 주말 이재한 형사가 총에 맞기 전 무전으로 남긴 마지막 대사다. 순간 드라마를 보는 내내 머리와 가슴에 묵직하게 자리했던 우리 ‘현실’의 ‘과거’ 세월호에 대한 한스러운 응어리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지난 12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여당 추천위원으로 활동해온 이헌(55) 부위원장이 특조위 해체를 주장하며 사의를 표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4월16일 2주기를 앞두고, 납득되지 않는 정치적 수사학과 셈법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조위의 진상규명 활동이 체계적으로 무력화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상실감은 포기하지 말라는 이재한 형사의 말을 더욱 사무치게 한다.
간절한 과거의 신호를 받아 든 박해영 경위는 범죄심리 분석관 ‘프로파일러’다. 차수현 형사(김혜수)의 죽음은 프로파일러로서의 역할과 역량을 각성시킨다. “증거도 증인도 저 멀리 하나의 점처럼 감정 섞지 말고 봐야 한다”며, 신문 기사를 바탕으로 20년 전의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박해영 경위. 하지만 곧, 프로파일링의 한계를 절감한다. “신문 기사만으로는 정보의 양이 부족하다.” 그렇다.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선 정보의 양이 충분해져야 한다.
우리 주변에도 미제사건 ‘세월호’를 근성있게 파헤치는 사람들이 있다. 사건 이후 지금까지 거의 매주 세월호의 기록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는 프로파일러는 <한겨레티브이>‘김어준의 파파이스’다. 음모론이라는 숱한 댓글과 비방은 여전하다. 하지만 세월호의 거의 모든 영상을 샅샅이 파헤치며 공개한 방대한 사실적 정보들은 음모론이라는 비난과 충분히 싸울 만한 맷집을 키웠다.
과거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 어떤 역사가도 역사를 고정된 무엇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역사는 사실들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자의 것이며, 그 역사는 지금 이 시간도 유동적이다. 다만, 정보의 양이 충분히 가득할 때, 사실들은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하지만 진상을 규명해야 할 지금의 특조위는 정보 수집이라는 기본적인 기능마저 상실한 상태다.
드라마 <시그널>이 매달리는 건 ‘미제사건’이다. 왜 하필 ‘미제사건’을 다뤄야 했는지, 왜 우리가 세월호를 잊을 수 없는지, 차수현 형사가 말해준다. “미제사건은 내 가족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니까 잊을 수가 없는 거야.
하루하루가 지옥이지.”
이러한 가운데, 세월호 유가족들이 다시금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개정안에는 선체 정밀조사를 위해 조사활동 기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세월호 선체 인양이 7월 완료 예정인데, 조사는 6월에 종료하겠다는 것이다.
304명이 희생된 참사를 10개월 안에 종료하려 한다니, 단 한 명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씨름하는 <시그널>의 ‘장기미제전담팀’에 비해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는 참으로 왜소하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이슈세월호 참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