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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유토피아의 꿈

등록 2016-02-10 19:18

1960년대 말, 학생 저항 운동의 물결이 서구를 휩쓸던 시절 그 진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선구적 사상가로 추앙받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고전에 능통한 학자로서 해박한 고전 지식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접목시켜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려던 노먼 브라운이었다.

그의 저서 <죽음에 맞선 삶>은 나오자마자 국제적으로 학계의 찬사를 받았고, 브라운은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더구나 여러 신문과 잡지에서 그를 저항 세력인 뉴 레프트의 기수로 떠올리며 히피들이 즐겨하던 대마초와 성해`방에 연결시키기까지 했다. 그 결과 행동가들 중에는 그를 만나러 오는 추종자들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그들은 당시의 히피와는 달리 짧고 단정한 머리에다 마약은 결코 입에 대지도 않을뿐더러, 애견과 함께 산책하며 명상하는 세심한 그리스 고전 전문가를 만났을 뿐이었다. 그 스스로도 학자이자 교육자일 뿐이라며 유명세를 회피했다.

그럼에도 선구적 사상의 중요성은 인정받는 법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삶에서 억압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으나, 브라운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더 멀리 몰고 가 억압이 없는 유토피아의 건설을 원했다. <죽음에 맞선 삶>은 뉴 레프트의 구호를 대변했다. ‘정치 세계는 내재적으로 미쳐 있다는 믿음, 핵가족의 거부, 차별과 경계를 초월하려는 욕망, 모든 것을 모든 이와 함께 하려는 희망, 진정성을 추구하며 승화나 업적의 윤리를 거부하는 것, 절대적인 자유와 놀이.’ 그 모든 것이 이 책에 있었다.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원치도 않던 유명세를 타게 된 이유였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유토피아의 꿈을 잃은 오늘날의 세계에서 우리가 노먼 브라운을 상기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거대한 사회적 변혁의 시기에 생성된 꿈은 사라진 듯 보여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여성운동이나 비핵화운동이나 세계화 반대라는 이름으로 그 꿈은 다시 나타난다. 설 연휴에 그 이름을 기억한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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