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예산을 놓고 다툼이 한창이다. 논쟁은 ‘돈을 어느 행정기관이 내야 하는가’로 집중된다. 어린이들을 키우는 비용을 누가 내야 하는지를 놓고 어른들이 서로 공을 떠넘기며 싸운다. 모양 참 좋지 않다.
이참에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을 제대로 해보는 것도 좋겠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키울 경제적 책임은 최종적으로 누가 지는 것이 가장 나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교육청들이 “받을 돈은 다 받고, 정작 써야 할 돈은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돈을 다른 데 썼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다른 곳’은 학교교육이다. 결국 무상보육을 해야 하니 학교교육에 쓸 돈을 아껴서 쓰라는 요청이다.
교육청은 중앙정부가 선심 쓰듯 주는 예산을 받아 쓰는 곳이 아니니 박 대통령의 표현은 틀렸다. 국민이 내는 내국세 가운데 20.78%는 처음부터 교육청 몫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일단 제쳐 두자. 보육과 관련된 비용을 낼 책임이 궁극적으로 어디에 있는지를 토론해 보자.
첫째, 교육청들이 학교에 들어갈 비용을 줄여서 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모자라는 부분을 중앙정부가 다른 분야로 가야 할 예산을 줄여 도와줘야 하는 것일까? 이게 누리과정 관련 발언에 드러난 박 대통령의 생각인 것 같다.
둘째, 부모가 벌어서 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렵다면 정부가 조금 도와주는 게 맞을까? 이게 전면 무상보육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셋째, 중앙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정부가 모두에게서 거둔 세금으로 보육을 하고, 부모나 학교가 보육비용을 분담한다면 오히려 정부가 고마워하고 가능하다면 보상해줘야 한다.
만 5살까지 무상보육을 하겠다고 공언한 한국 정부는 이미 세 번째 길을 선택한 것이다. 많은 서구 선진국들이 택한 길이다. 이제 와서 이를 되돌리려 하니 딱하다. 잘못된 방향일 뿐 아니라 되돌려지지도 않을 것이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에서 아이 키우기는 국가가 책임지는 것을 기본으로 정책 틀을 짠다. 이런 나라에서는 아동을 부모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라고 본다. 따라서 국가와 아동 개인 사이 일대일 관계로 문제를 푼다.
여기서부터 아동수당과 장기육아휴직 같은 과감한 육아정책이 나온다. 보육비 부담도 같은 맥락에서 방향이 정해진다. 가정이 없는 아이들에게까지 평등한 복지를 제공하게 된다. 부모의 아동학대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아동을 중심에 놓고 결론을 내린다. ‘생계를 위한 선처’ 따위는 논리적으로 발붙이기 어렵다.
그렇다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가운데 어느 쪽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맞을까?
여기도 답은 명확하다. 국가가 모든 아동을 똑같이 책임져야 한다고 믿는다면 중앙정부가 단일한 기준을 가지고 재원을 배정하는 것이 맞다. 아동 사이에 차별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평등하게 배분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게 아니라면 교육청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자신의 예산 안에서 자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지역의 결정에 따라 학교교육을 더 강조할 수도 있고 어린이 보육을 더 강조할 수도 있게 된다. 평등한 육아 책임을 지는 대신 아이들 사이 차등이 생기는 선택이다.
정부는 10년 넘게 저출산 고령화가 문제라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대책은 늘 옹색하다.
단순하고 명확한 해법이 필요하다. 태어난 아이를 키우는 비용은 국가가 책임을 지자. 이 원칙을 바탕으로 정책 틀을 짜 보자. 자식에게 가정의 문화와 인성을 전해줄 책임은 부모에게 지우되, 경제적 책임으로부터는 해방시켜 주자. 국가가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믿음을 줘야 문제가 해결된다.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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