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그렇게 핵무기 개발에 목을 매고 있을까. 남한을 핵무기로 공격해 적화통일을 하려고? 아니면 미국의 심장부에 핵미사일을 날려 미국을 납작하게 만들려고?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이 아무리 첨단 핵무기를 개발해도 핵무기를 사용하는 순간 ‘평양은 지도에서 사라지고’, 북한은 초토화된다. 미국의 핵 능력과 비교하면 북한의 핵무기는 아직 어린애 ‘장난감’ 수준이다.
북한이 왜 핵무기를 가지려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을 가질 때만이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2003년 4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이후 온갖 당근과 채찍이 동원됐지만 성과는 없었다. 오히려 핵개발 능력만 높아졌다. 올해 초에는 수소탄 실험이라는 4차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북핵 문제의 본질을 잘못 이해했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한 결과다.
먼저 북한이 언제부터 핵무기 개발에 나서게 됐는지부터 살펴보자. 이재봉 원광대 교수는 북한이 핵개발에 나서게 된 결정적 계기는 미국에 의한 남한의 핵무기 배치라고 보고 있다. 이 교수는 미국 국무부가 1990년대 비밀 해제해 출판한 ‘1950년대 후반의 외교문서 자료집’을 분석한 뒤, 미국이 ‘늦어도 1958년 1월’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했고, 이에 위협을 느낀 북한이 196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핵개발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한국에 대한 막대한 원조가 대부분 남한 병력(72만명) 유지에 지출되는 걸 우려했다. 그래서 핵무기로 북한의 위협을 막아줄 테니 남한 병력을 감축하도록 했다. 주한미군은 280㎜ 원자포와 아니스트 존 핵미사일이 남한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1958년 1월28일 확인했다. 그 뒤 다양한 전술핵무기가 들어와 1970년대까지 거의 800기에 이르는 핵탄두가 남한에 배치됐다.(<이재봉의 법정 증언>)
북한으로서는 당연히 생존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핵무기 개발 능력이 없던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1970년대부터 경제력이 남한에 뒤지기 시작하면서 남한과 재래식 무기 경쟁을 벌일 수도 없게 됐다. 결국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보기 위해 본격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나선 것이다.
북한은 이런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북핵 폐기의 전제 조건으로 자신들의 체제 보장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는 2005년 9월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 공동성명’에 잘 반영돼 있다. 공동성명의 핵심은, 북한은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고 대신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뒤 이런 합의는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다. 9·19 합의 뒤에도 부시 정권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다양한 제재 조처를 취했고, 미국의 의도를 의심한 북한도 핵개발을 계속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했다. 이후 북핵 문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실험 강행과 국제사회의 제재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올 초 수소탄 실험 이후 벌어지고 있는 상황도 북핵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북핵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을 원한다면 싫든 좋든 북한이 생존을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하려 한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게 우선이다. 이런 전제 위에서 북한 체제 보장을 위한 평화협정 체결이나 북-미, 북-일 수교 등 다양한 카드를 가지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고 국제사회의 제재나 군사적 압박을 아무리 높여봤자 시간만 흐르고, 북한의 핵개발 능력만 더 키워줄 뿐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다. 북한 붕괴를 기대하는 세력도 있지만 중국이 버티는 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준비되지 않은 북한 붕괴는 오히려 재앙이다.
이 뻔한 해법을 외면한 채 군사적 긴장만 높이는 우리 정부와 미국은 북핵을 정략적으로 이용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북핵을 국내 정치에 끌어들이고, 미국은 중국 견제의 지렛대로 사용하려 한다는 의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이래 가지고는 북핵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
정석구 편집인 A href="mailto:twin86@hani.co.kr">twin86@hani.co.kr
정석구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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