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독립 잡지가 약속된 출간일을 지키지 못해, 친구들과 둘러앉아 사과문을 작성했다. 꼼꼼하게 별의별 신경을 모두 쓰다 보니 시간이 지체되어 버린 것이다. 언제나 마감일을 어기고 끝까지 원고를 부여잡는 성격이라, 송고하는 이메일의 서두는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하기 일쑤라고 친구들에게 고백해보았다. 한두명은 나도 그렇다고 말하고, 한두명은 마감을 어겨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결과물을 얻으려면 번번이 시간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는 ‘이상한 필연’에 대해, 시간약속을 엄격히 지키는 이들이 이해해줄 수 있을까. 사과문을 작성하는데,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모두 조심스러웠다. 신춘문예 심사를 할 때였다. 담당 기자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와 중간 상황을 살폈다. 상자 속에 손을 넣어 투고작을 새로 꺼내는 내게 “이 상자 속에 좀 좋은 작품이 있지요?”라고 물었다. 어떻게 아셨느냐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게 맨 마지막에 도착한 작품들이에요. 좋은 작품은 마지막에 쏠려요.” 좀 더 나은 작품들은 언제나 이렇게 막차를 타고 우리 곁으로 온다. 시간을 엄수하는 사람의 성실함은 작품의 엄격함에 기여한다. 그러나 ‘데드라인’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작품의 미흡한 부분이 자꾸 눈에 밟혀 붙잡고 있어야 성이 차는 사람의 불안함도 다른 면에서 작품의 엄격함에 기여한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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