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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흔하디흔한 야만

등록 2016-01-11 18:40수정 2016-01-11 18:40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모인 연말모임에 대해 후배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잖아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손을 안 씻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놀랐어요.” 그 손으로 테이블 한가운데에 놓인 안주를 집어먹을 것이고, 그 손으로 남의 술잔에 술을 따라줄 것이고, 그 손으로 악수도 할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다고 했다. 그가 끔찍하다고 여기는 것은 손의 위생 상태를 포함해서, 의식 수준의 불균형이었다. ‘똑똑한 사람들의 모임’에서 ‘같은 수준의 야만’을 경험한 것을 특히 강조했다. 지하철 공중화장실에는 변기가 많고 세면대는 적다. 그래도 화장실에서는 번번이 줄을 서게 되고 세면대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물을 절약하기 위해 센서까지 장착된 첨단 수도꼭지가 설치돼 있지만, 비누가 없을 때도 많다. 어제는 동네에 새로 생긴 공중목욕탕에 갔다. 으리으리한 시설에 감탄하며 입장했지만, 내가 앉은 구석 자리에는 오줌 냄새가 지릿했다. 둘러보다 아이에게 오줌을 누게 하고 샤워기로 연신 물을 뿌려대는 엄마를 목격했다. 몇 분 전에도 그 자리에서 사내아이가 번듯하게 서서 오줌을 눴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목욕을 마치고 바깥으로 나오다 그 모녀를 다시 마주쳤다. 옷차림도, 그들이 올라탄 승용차도 내로라하는 종류였다. 우리를 둘러싼 것들은 으리으리해졌지만, 우리의 안쪽에서는 서슴없는 야만이 서슴없이 흘러넘친다. 이 야만은 대개 반성이 없다. 그래서 더 야만스럽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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