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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달력

등록 2016-01-06 18:49

탁상 달력을 선물받았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가 자신의 그림 열두 점을 담아 달력으로 제작을 했다. 비단 위에 그린 채색화였다. 머리에 핀을 꽂은 여자애들이 열두 달 내내 등장한다. 담장 바깥을 엿보는 뒷모습, 친구에게 귓속말을 하는 옆모습, 토끼풀꽃으로 엮은 목걸이를 한 모습 등, 인물들은 요란한 웃음이 아니라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희미한 미소가 가능할 잔잔한 즐거움들을 포착하고 있다. 이 그림들이 각별하기도 하지만, 나에겐 2016년을 함께할 유일한 달력이어서 더더욱 각별하다. 한 해를 하나의 탁상 달력과 함께 보내는 게 버릇이 되었는데, 올해는 달력을 얻을 기회가 한 번도 없어서 아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연말 풍경 중, 귀가하던 아버지의 손에 들린 달력들이 단연코 핵심 이미지였다. 달력이 많이 들어온 해를 부모님은 보람되게 여겼다. 매일매일 음력과 간지와 손없는 날을 헤아리는 게 버릇이 된 엄마는 날짜가 큼지막하게 적힌 달력을 골랐고, 힘찬 붓길이 우람한 산세를 포착한 풍경화 달력은 아버지가 선택했고, 한방을 쓰던 나와 동생은 앙증맞은 크기에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알록달록한 달력을 골라 벽에 걸어두었다. 거실에도 부엌에도, 달력이 하나씩 보기 좋게 걸려 있었다. 달력은 집안의 핵심 인테리어였다. 달력 속 동그라미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온 가족의 대소사와 가족 구성원 각자의 스케줄을 함께 열람하며 한 해를 살았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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