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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세월호 623일, 그리고 ‘7시간’

등록 2015-12-28 19:00수정 2015-12-29 10:17

유모차를 끌고 젊은 부부가 지나간다. “세월호 리본 드릴까요?” 아기 엄마에게 준 다음 아빠 것도 건네준다. 그들에게 세월호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아기 엄마가 느닷없이 묻는다. “외국인이세요?” 할 수 없이 일본인이라고 하자 아기 엄마 눈가가 갑자기 빨개지며 울먹이려 한다. “일본 사람이 어떻게 이런….” “우리 애도 언제 이런 일을 당할 수 있잖아요.”

칠순을 눈앞에 둔 그녀가 혼자서 세월호 피케팅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세월호 인양 작업이 구체화된 지난 9월부터다. 집에서 가까운 왕십리역 등에서 ‘인양 전과정을 공개하라!’ ‘희생자 미수습자 가족 공식참여 보장’ 등의 문구를 쓴 2개의 피켓을 들었다. 하나는 세로가 90㎝, 또 하나는 60㎝. 딱 자기 키만 한 높이였다.

“도와드리고 싶어서 왔어요!” 세번째 피케팅 하는 날이었다. 노란 리본을 받아갔던 여학생 두 명이 다시 돌아와서는 자기들이 피켓을 들고 있을 테니 좀 쉬시란다. 초등학교 6학년생. “다음 또 하실 때 연락해주세요. 이런 것도 안 하면 점점 다 잊어가니까….”

지난 크리스마스날 20번째 피케팅을 한 그녀는 이 분야에선 신참내기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며 수많은 ‘리멤버 0416’ 회원들이 전국 곳곳에서 길게는 300일 넘게 세월호 피케팅을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잊힌 게 아니라 이렇게 우리 일상에 녹아들고 있다.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지난 27일 오후, 홍대 근처의 한 공연장에서는 ‘열일곱살의 버킷리스트’ 열번째 공연이자 마지막 공연이 열렸다. ‘열일곱살의 버킷리스트’는 단원고 2학년 4반이었던 열일곱살의 고 박수현군이 일기장에 적어놨던 버킷리스트 중 ‘공연 20번 뛰기’에서 시작됐다. 록밴드 활동을 했던 박수현군을 기리기 위해 기성 록밴드가 참여하는 공연을 기획한 것이다.

매회 한 반씩 학생들을 소개해왔는데 이날은 2반 차례였다. “수정이 사진을 거실에서 항상 볼 수 있게 의자에다 올려놓고… 방에는 지금도 불을 계속 켜놓고 있어요. 지금 내 곁에 있다면 안아주고 싶죠.” 공연장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이어졌다. 공연을 하는 가수들이나 초중고 자녀를 데리고 온 부모들, 그리고 숨진 단원고 학생 또래의 젊은이들 모두 그렇게 자기 방식대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이렇게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어렵사리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고 청문회까지 했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다. 정확한 침몰 원인이 무엇인지, 초기 구조 상황은 왜 그리 부실했는지, 청와대 등 컨트롤타워는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등 모든 게 의문투성이다. 아홉명은 여전히 시퍼런 겨울바다 속에 잠겨 있다.

세월호 참사는 사람보다 돈을 앞세우는 황금만능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원칙과 규정을 언제라도 무시할 수 있다는 편의주의, 직업윤리를 내팽개친 채 나만 살고 보자는 이기주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재난 구조 체계 등이 어우러져 일어난 부패·부실공화국 대한민국의 축소판이었다. 그렇기에 참사 이후에라도 제대로 대처했다면 우리 사회는 한 단계 발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그럴 기회를 철저히 외면했다. 진상이 밝혀지는 게 뭐가 그리 두려웠는지 특조위의 활동도 끊임없이 무력화하고 청문회도 반쪽으로 만들어버렸다. 왜 그랬을까.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밝혀지지 않은 ‘7시간’ 때문이었을까. 그 7시간의 행적을 감추려고 진상 규명 자체를 가로막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들의 기억마저 지우려고 한 것일까.

정석구 편집인
정석구 편집인
오늘로 세월호 참사 623일째다. 가슴에 사무친 응어리는 세월이 지난다고 풀리는 게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명백히 밝혀지고, 책임자들이 공개 사과하고, 더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될 때만이 유족들의 피맺힌 한이 풀릴 것이다.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도 낱낱이 밝혀야 함은 물론이다. 그날을 기약하며 또 안타까운 한해를 보낸다.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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