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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국가는 시장이 아니다 / 조현경

등록 2015-12-27 19:02

영국 런던대학교의 커뮤니케이션학자 제임스 커런은 미국 언론이 ‘빈곤’을 다룰 때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빈곤의 구조적 원인이나 취약한 공공 정책보다는 ‘가난한 사람’의 사례에 초점을 맞추어 ‘개인화’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난한 사람은 자신이 못나서 그렇게 된 것이란 암묵적인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언론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요 경제지와 일부 민간연구기관들은 얼마 전 여야 합의 실패로 국회에서 파행을 겪고 있는 ‘사회적경제기본법’을 가리켜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느니, “정부 지원에도 불구하고 세금만 낭비하는 좀비기업을 양성할 법”이라고 공격해왔다.

사회적 경제 분야에 있는 기업들의 경영이 전반적으로 취약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경영 부진이 이들만의 문제인가? 한국은행의 기업경영 분석 자료를 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기업의 비중이 2009년 12.8%에서 2014년 15.2%로 늘어났다. 2004년에서 2013년까지 창업한 자영사업자 949만곳 가운데 793만곳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폐업했다. 기업 경영은 규모나 성격, 형태에 상관없이 부침을 겪는다. 그렇다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특정 분야의 기업들을 싸잡아 좀비족으로 취급하는 것은 부당하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비판적 보도의 이면에는 신자유주의적 논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공공부문의 축소와 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 자유를 강조한다. 아울러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이 경제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는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시장 권력’의 기득권을 철저하게 대변한다. 그러나 사회의 공동체적 가치와 ‘좋은 삶’은 시장에서 창출되는 게 아니다. 더구나 부와 소득이 한쪽으로 쏠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력과 생산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그야말로 ‘승자 독식’의 논리다.

반면, 사회적 경제는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건강한 노동을 통해 공급하면서 ‘사회’와 ‘생태’를 돌보는 영역이다. 기업경영의 기계적 합리성과 생산의 효율성을 요구받기도 하지만, 개인의 이익이나 기업 가치의 극대화보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실제 삶에 도움을 주자는 게 사회적 경제의 궁극적 목표다.

본래 사회적경제기본법은 여야 가리지 않고 142명의 국회의원이 공동발의한 법이다. 김종걸 한양대 교수는 “사회적경제기본법은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조직을 포괄하는 공통의 법적 토대와 정책 추진 체계를 정비하는 수준의 법”이라며, 법안에 대한 지나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이은애 센터장은 “사회적경제기본법이 통과하더라도 법안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경쟁과 독점이 만연한 시장에서 개별적으로 고군분투하는 자영업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의 원리인 호혜와 연대성에 기초해 대중소 경제주체들 간의 공존 가능한 기반을 마련한다는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는 아직 유아기다. 생산 비중이나 부가가치 기여도로 따지면 주요 선진국의 10분의 1도 채 안 된다. 사회적 경제의 확산을 막으려는 세력은 재벌을 옹호하고 정부에 기업친화적인 정책만 유도함으로써 ‘국가의 영원한 시장화’를 기도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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