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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성탄 카드

등록 2015-12-23 18:42

성탄 카드를 몇 장 받았다. 한 해를 요약하고 다음해를 기약하는 카드들을 넣어두기 위해 서랍을 열었다. 색연필 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어렸을 땐 해마다 성탄 카드를 친구들에게 보냈다. 친구들의 이름을 연습장에 적고, 문방구에서 새로 사온 도화지를 정성 들여 오렸다. 물을 떠와 붓을 적셨고, 물감을 찍어 그림을 그렸다. 가장 가는 붓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라 적으면 그림은 완성되었다. 굴뚝과 산타클로스를 그렸고, 스누피 같은 만화 주인공에게 빨간 모자를 씌운 그림도 그렸다. 무얼 그려야 할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상투적인 성탄 이미지들을 몇 가지 반복해서 그렸다. 깔끔하게 그리려는 데에만 공을 들였다. 하지만 카드의 내용을 적을 때에는 펜을 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친구의 이름을 적고서, 나만의 문장을 이어나가려고 애를 썼다. 그 친구라서 가능할 고유한 표현을 하려고 오래 생각했다. 봉투에다 친구네 주소를 적고 우체통에 넣는 순간, 크리스마스에 내가 할 일은 다한 느낌이 들었다. 색연필을 꺼내 그림을 그려본다. 유치한 그림을 즐겁게 그려본다. 이 유치한 그림을 반갑게 여겨줄 유치한 친구 몇이 아직도 곁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한다. 여전히 내용을 쓰는 일은 어려웠다. 지나간 어느 성탄절에 써본 적 있는 문장밖엔 떠오르질 않았다. 관련되어 떠오르는 문장은 이토록 식상한데도 크리스마스를 여전히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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