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3, 5, 7, 6, 8.
이 숫자들을 머리에 넣어두면 여러모로 유용하다. 각 숫자에 10을 더하면 0~9살부터 10살 단위 인구 비율이 나온다. 곧, 0~9살은 전체 인구의 9%, 50~59살은 16%, 60살 이상은 18%다. 10년 전엔 ‘2 4 6 8 7 1 3’이었다. 이후 20~30대 인구가 34%에서 28%로 6%포인트 줄고, 50살 이상이 24%에서 34%로 무려 10%포인트나 늘었다.
인구 분포는 갈수록 경제·사회뿐만 아니라 정치의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국민의 긍정률은 40%대 초중반, 부정률은 40%대 중후반으로 굳어진 상태다. 더 눈여겨봐야 할 건 나이대별 격차다. 50살 이상 인구의 대략 70%가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반면 20~30대는 70% 이상이 반대한다. 40대는 20~30대 쪽에 가깝다. 나이에 따라 지지도가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대통령은 처음이다. 나이 든 사람들의 지지로 지탱되는 ‘노인 정권’이라 해도 좋다.
세계적으로 파시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미국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노골적으로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한 뒤 오히려 지지율이 올랐다. 지구촌 인구의 20% 이상에 대해 ‘배제적 폭력’을 행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파시즘이다. 프랑스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는 극우 국민전선이 지지율 1위를 차지했다. 물론 국민전선이 2차 결선투표에서 패배했듯이 미국인도 트럼프를 선택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다른 나라 걱정을 할 때가 아니다. 박근혜 정권이 갈수록 파시즘 색채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국가주의(민족주의) 과격파 세력(정당)이 전통적인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법적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해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다(<파시즘>). 법치의 외피를 쓰고 있으나 사실상 민주주의를 경멸하고 밀어붙이기와 억압을 선호하는 박근혜 정권은 여기에 절반쯤 들어맞는 ‘세미 파시즘’ 정권이다. 위기의식과 공포를 불러일으켜 대중의 불안을 조장하고 권력 집중을 추구하는 것도 일치한다. 거짓말과 공작도 되풀이된다.
박근혜 정권은 이데올로기 기구와 공안기관, 관변단체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언론과 연구·문화·학술 기관 등 이데올로기 기구는 이미 다수가 정권에 장악돼 있다. 일부 종편과 대형 교회 등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곳도 여럿이다. 2년 전 총장이 공작으로 밀려난 뒤 검찰은 공안 논리를 강화해왔으며 경찰 역시 마찬가지다. 몇몇 관변단체는 물리력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더 강경한 쪽으로 길을 닦는다.
박 대통령의 말은 거칠어지는 만큼이나 허황하다. 자신만 따라오면 모든 문제가 풀릴 거라는 주술에 가깝다. 노동권을 약화시키는 이른바 노동개혁 법안을 ‘일자리를 달라는 청년들의 절규’에 이어붙이고, 댓글 공작을 하던 국가정보원의 권한을 강화하지 않으면 테러에 대응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역사 테러’는 ‘내부 정화’를 넘어 ‘통일 대비’ 수단으로 찬양된다. 다른 나라 극우세력이 오랫동안 시도해도 못한 일을 그는 짧은 시간에 해내고 있다. 그 결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창조경제’에 이어 유신체제를 모방한 이상한 ‘창조정치’가 창조되고 있다.
19일은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지 3돌이 되는 날이다. 당시 그의 모습에서 지금의 그를 생각한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현 정권의 주요 지지기반은 앞으로도 나이 든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권위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위계질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선거에서 응집력이 높다. 야당 분열이 가시화하면서 여권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이길 가능성은 더 커지고 있다. 이후 파시즘적 행태는 더 심해질 것이다. 트럼프나 국민전선이 집권하는 경우를 상상해보면 된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김지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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