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0월12일 지방자치 실시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이던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병실에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 몰래 찾아왔다. 지방자치법은 1988년 여소야대 국회에서 입법됐지만 3당 합당이 되자마자 휴지 조각으로 변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광역·기초단체장 임명권을 포기해야 하는 지방자치제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김대중-김영삼 두 사람은 병실에서 지방자치 실시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며칠 뒤 김 총재는 단식을 풀었다. 지방자치제는 그렇게 부활의 발판을 마련했다. 두 사람이 손을 잡은 건 지방자치가 곧 민주주의라는 인식을 공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밑바닥엔, 서로 의지하지 않고는 각자 정치적 난관을 헤쳐나갈 수 없다는 본능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기억으로만 남은 ‘양김의 정치’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자명하다.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도 그때의 양김과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이런 얘기를 하면 ‘두 사람을 어떻게 정치 9단인 양김과 비교하나’란 타박을 받기 쉽다. 맞다. 문재인·안철수가 양김 정치력의 절반이라도 가졌다면 제1야당이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생존 본능은 정치력보다 훨씬 앞서는 법이다. 흔히 문-안 두 사람을 화합할 수 없다는 뜻에서 ‘적대적 경쟁관계’라 부르지만, 내가 보기엔 ‘상호의존적 공생관계’가 더 적합하다. 다만 아직 그걸 깨닫지 못할 뿐이다.
안철수 전 대표가 ‘혁신전당대회’를 주장하며 배수진을 쳤다. 사실 안철수가 주장하는 가치는 전당대회가 아니라 ‘김상곤 혁신안’보다 훨씬 급진적인, 그래서 거센 반발과 논란이 불가피한 10대 혁신안에 담겨 있다. 그 10대 혁신안을 문재인 대표가 받아들였는데도 전당대회를 계속 고집하는 건 명분이 약하다. 하지만 안철수의 버티기로 타격을 더 받는 쪽은 문재인이다. 요즘 당 안팎에서 나오는 중재안의 핵심은 ‘문재인 대표 사퇴-안철수 탈당 포기’다. 안철수는 한 번도 언급한 적 없는 ‘탈당’이라는 유령과, 문재인이 당원 투표로 획득한 ‘대표직’이 등가로 교환되는 기묘한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명확하다. 안철수의 지지율이 비록 한 자리 숫자일지라도 그가 뛰쳐나가면 야당은 내년 총선에서 치명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문재인의 목을 죄는 비수가 된다. 되돌아보면 2012년 대선 때도 그랬다. 문재인 혼자 힘으로 박근혜를 이기는 건 그때도 어려웠고, 지금 상황도 별반 다르질 않다.
안철수는 문재인의 사퇴를 요구한다. 하지만 정작 문 대표가 그만두면 칼날을 쥐게 되는 건 오히려 안철수 자신이다. 새정치연합을 한번 돌아보라. 안 전 대표 기자회견 이후 당내 인사들의 선택을 좌우하는 건 누가 옳으냐가 아니다. 바로 내년 총선의 공천권이다. 안철수의 혁신안은 엄청난 당내 반발과 후폭풍을 동반한다. 문재인이 뒤로 물러서면 안철수 혼자서 이 후폭풍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공천을 둘러싼 이전투구의 책임을 뒤집어쓴 채 휩쓸려 날아가 버리기 쉽다.
두 사람은 너무 멀리 와 있다. 하지만 동행이 생존의 문제라면 지금이라도 손을 잡지 못할 이유가 없다. 둘 다 ‘혁신의 가치’를 말한다. 정치판에서 ‘가치’만큼 모호한 단어도 드물지만, 그래도 ‘가치’를 내건 싸움이 다른 정치투쟁에 비해선 보기에 훨씬 낫다. 비상대책위를 꾸리든 아니면 혁신위 수장을 둘이 같이 맡든 그건 부차적이다. 두 사람이 만나서 ‘혁신안의 공유와 실천’을 함께 약속하는 건 현재의 균열을 메우는 충분한 명분이 될 수 있다. 아직 때는 늦지 않았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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