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레일리-윌리스 공식과 수중폭발의 버블 현상을 말한다. 변호사가 흡착물질에 대한 광물 분석에서 주의할 특성을 말한다. 피고인은 흡착물질이 알루미늄 재질에만 주로 붙는다면 그 과학적 근거는 뭐냐고 묻는다…. 법정은 마치 과학 토론장 같은 느낌이었다.
지난 7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524호 법정에서 열려 저녁 7시20분까지 계속된 ‘천안함 명예훼손 사건’의 결심 공판 풍경이다. 이 사건이 기소된 지 5년여 만이다. 당시 민군합동조사단에 민간위원으로 참여한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가 천안함 침몰 원인으로 ‘좌초와 충돌’ 가능성을 주장하며 국방부와 합조단에 대해 조작·은폐 의혹을 제기하자 김태영 국방부 장관 등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검찰이 기소해 시작된 재판이다.
첫 공판이 열리고 ‘법정에 나온 천안함 보고서’라는 제목의 칼럼(2011년 8월29일치)을 쓴 지도 4년이 지난 이날, 작은 법정에서 방청객 30~40명과 함께 4년간의 재판을 총정리하는 공판을 방청했다. 재판장은 평소 보이지 않다가 몰려온 기자들한테 ‘컴퓨터의 타자 소리가 방해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어 프레젠테이션 준비 때문에 30~40분이 지난 뒤 시작된 검찰의 최종의견과 구형(징역 3년)이 1시간 남짓 이어지고, 다시 2시간에 걸친 변호인의 긴 변론, 1시간의 피고인 최후진술이 이어졌다. 수치, 데이터, 그래프, 시뮬레이션으로 채워진 긴 공판에도 방청객은 지루함을 잊고 집중한다.
공판을 지켜보며, 2010년 3월26일 장병 46명이 희생된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지나온 극심한 논쟁의 상황이 떠올랐다. “과학적 조사”의 결과물로 나온 합조단의 결론은 침몰 원인을 둘러싼 증거 논란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다른 결론을 제시하는 과학 논문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합조단이 침몰 원인의 증거와 설명을 충분히 제시했는지에 관한 물음은 깊어지고 지속됐다.
<합동조사결과 보고서>가 충분한 설명을 제공했는가는 법정에서 중요한 다툼의 대상이 되었다. 증인석에는 여러 합조단 위원들과 논쟁 참여 과학자들이 나와 조사 과정과 분석 결과에 대한 전문가 견해를 증언했다. 결심 공판에서도 변호인과 피고인은 여전히 ‘설명되지 않은/못한’ 의문의 목록을 제시한다. 공적 조사기구인 합조단의 결론에 이토록 불신과 의문이 지속되는 것은 천안함 논쟁이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임을 보여주는 듯했다. 합조단의 보고서는 버블주기, 시뮬레이션, 그래프, 데이터, 시료, 계산식, 모의실험 분석을 담고서도, 다른 전문 과학자의 과학적 반론이 제기될 정도로 왜 ‘충분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 채 논란의 문을 열어 놓았을까?
증거 논쟁이 재판에서 중요하게 다뤄졌지만, 사실 ‘과학 논쟁’에 가려져선 안 되는 쟁점은 공직자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다투는 것이다. 공적 조사결과에 대한 비판은 어느 선까지만 허용되는가, 공직자 명예훼손이 성립되며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가?
침몰 원인 논쟁의 종점이 어디일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설명되지 않은 물음이 사회적 논란거리로 남는다면 논쟁은 계속돼야 한다. 우리 사회가 그 논쟁의 장을 마련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법정이 그마나 공론장의 구실을 해왔다는 점은 다행스런 일이다. 크나큰 참사의 원인·책임을 규명하는 공적 조사활동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공식 결론에 대해 반박과 의문이 제기될 때 논쟁적 상황을 어떻게 다뤄야 사회적 갈등의 비용을 줄일 수 있을지, 이런 근본 문제도 생각하게 하는 재판이었다.
오철우 삶과행복팀 기자 cheolwoo@hani.co.kr
오철우 삶과행복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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