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서 이틀 밤을 잤다. 하루는 대학교 기숙사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는 시내에 있는 여관에서. 하루는 무료였고, 하루는 유료였다. 두 숙소 모두 난방조절장치가 없었다. 내게 알맞은 적정 온도를 유지할 수 없어 이틀 밤 모두 단잠을 못 잤다. 기숙사는 추웠고, 여관방은 더웠다. 기숙사에서는 자다 일어나 물을 끓였다. 페트병에 담은 다음, 이불 속에 넣고 다시 잠을 청했다. 여관방에서는 이불을 걷어찼고 입고 있던 잠옷도 벗어야 했다. 찬물에 흠뻑 적신 수건을 머리맡에 두어야 했다. 추위에 떨었던 방을 나는 친자연주의의 방이라 불렀고, 더위에 갑갑했던 방을 나는 자본주의의 방이라 불렀다. 추위의 과잉은 내가 한심한 것이 다였지만, 더위의 과잉은 여러 가지로 착잡했다. 음식점에서 밥을 사 먹으면 과식을 하거나 음식을 남겨야 하는 것. 버스를 타면 과도한 난방 때문에 얼굴이 벌게지도록 후덥지근함과 싸워야 하는 것. 부족함 때문에 불편한 게 아니라, 과잉 때문에 겪는 불편이 영 불편했다. 이스탄불의 무더위 속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다가, 냉방이 잘되는 찻집을 찾기 위해 방황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도심 어디에도 에어컨을 가동하는 찻집이 없었다. 유리문을 꼭꼭 닫아건 스타벅스가 눈에 띄었고, 그리로 들어갔다. 과연 시원했다. 아니, 이내 추워져서 카디건을 꺼내 입었다. 결국 나는 그날 감기에 걸렸다. 서울은 냉난방의 천국이다. 이런 천국은 지옥과 더 닮아 있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