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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착한 소비에서 정의로운 소비로 / 조현경

등록 2015-12-06 18:49

“선은 악마저도 포용하고 받아안는 것이지요. 허나 정의는 악을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정의는 오로지 악을 방벌함으로써 정의롭습니다.”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어린 이방원(남다름)이 홍인방(전노민)에게 던진 대사다.

근래 ‘착한 소비’라고도 하는 ‘윤리적 소비’가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 ‘착한 소비·윤리적 소비’란 자연과 환경, 주변과 이웃까지 생각하는 사려 깊은 소비를 하는 것, 윤리적 가치판단에 의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나눔을 실천하거나 윤리적으로 생산한 제품 또는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 비윤리적인 제품이나 그 회사에 대해서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 소비 자체를 자제하는 것, 재사용과 재활용을 권장하는 것, 포장을 최소화한 상품을 선택하는 것 등이 착한 소비 생활 수칙들이다.

이에 반해 정의로운 소비는 어떤가. 정의로운 소비는 어린 이방원의 대사에서 시사하듯 악을 방벌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은 불매를 외치다가도, 돌아서서 해당 기업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역설적 메커니즘을 꿰뚫고 있는 기업은 상황을 모면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정의로운 소비’는 이런 역설적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수사적 장치라 하겠다. 즉, 제대로 된 ‘불매운동’을 통해 불공정한 불법과 비윤리적 기업 활동에 대한 응징 시스템을 엄정하게 작동시키자는 취지다.

나이키는 소비자의 ‘불매운동’을 변화의 계기로 삼아 지속가능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1996년 미국의 <라이프>지에 한 소년이 나이키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사진이 실린 뒤 아동노동 착취에 대한 경각심은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나이키는 개발도상국의 청소년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이젠 미국 경제지 <포천>이 선정한 ‘2015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목록 13위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사정은 어떠한가. 지난 7월 롯데그룹에서 벌어진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황제경영·비밀경영뿐 아니라 불공정 경쟁으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비난 여론이 일면서 롯데제품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불매운동에 돌입한 7월말 일주일 동안 롯데마트 매출은 오히려 전주 대비 약 4% 증가했다. 당위적인 여론만 형성했을 뿐, 휴가철과 맞물려 벌어진 불매운동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다는 뜻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4년이 흘렀지만, 이들 기업은 여전히 건실하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피해자 530명 중 403명이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사용했으며 사망자 143명 중 70%가 옥시레킷벤키저 제품을 썼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옥시를 비롯해 가습기 살균제 제조 판매사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꾸준히 벌여왔지만, 효과는 미약하다. 역시 대대적인 ‘불매운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2013년 5월 남양유업의 ‘물량 밀어내기’로 촉발된 불매운동이 일부 성과를 냈다고는 하지만, 2013년 상반기 커피믹스 시장점유율은 전년보다 0.9% 상승했으며, 그해 출시한 컵커피는 출시 1년 만에 매출 220억원을 달성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한국 소비자는 착하다. 이슈가 터질 때마다 불매운동의 움직임이 없지 않지만, 실제 기업의 변화를 끌어내기까지 전개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의로운 소비’는 작은 불편과 희생이 필요한 번거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감수하고라도 착한 소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의로운 소비로 각을 세워보는 건 어떨까.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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