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나르 뮈르달은 1974년 하이에크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학자이다. 그렇지만 국적에 상관없이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던 그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미국에서였다. 일찍이 카네기재단의 지원으로 미국에 간 적이 있었던 뮈르달은 1938년 두 번째로 초청을 받아 미국을 방문했다. 연구자의 출신 지역에 대해 여전히 민감하게 반응했던 미국의 흑인 문제에 관해 제3자의 눈으로 공정하게 판단해달라는 청이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1944년에 <미국의 딜레마: 흑인 문제와 현대의 민주주의>가 나왔다. 이 책은 흑백 분리 교육을 금지시킨 1954년의 대법원 판결문에도 인용되었다.
그 뒤 그는 교육자로서, 저술가로서, 행정가로서 경제학 연구와 정책 개발을 위해 유엔 경제위원회와 스톡홀름대학교에서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나치에 격렬하게 반대했던 그는 <아시아의 딜레마>라는 책을 통해서는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의 빈곤을 척결하려 시도했다. 그 책에서 미국의 베트남 참전에도 반대하면서 미국이 북베트남과 평화 협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인도차이나 미국 전범 청문회’의 공동 의장을 맡기까지 했다. 또한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하이에크와 같은 ‘반동주의자’들에게 그 상이 주어진다면서, 그 상의 폐지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의 도전 정신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스톡홀름대학교의 경제학 스승이었던 구스타브 카셀이 뮈르달에게 충고했다. “군나르, 선배들을 더 존중하도록 해. 그들이 네 승진을 결정한다.” 군나르는 이렇게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우리가 그들의 추도사를 씁니다.” 우리의 위정자들에게 앞날의 평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지만, 그들이 추도사에 추호의 신경이나 쓸지 모르겠다. 그들이 이처럼 아무런 논리도 없이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은 후손들이 알아서 그들의 행태에 관한 사실을 조작해주리라는 믿음이 있어서일까?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