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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정치 9단’들이 세상과 작별하는 방법 / 임석규

등록 2015-11-25 18:40

‘양김’ 사이엔 정말 뭔가 특별한 게 있는 모양이다. 디제이가 서거한 2009년 하반기엔 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 역주행에 분노가 쌓여가고 있었다.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관계 3대 위기’라고 디제이가 시국을 압축해 정리한 게 그즈음이었다. 요즘도 민주주의 후퇴에 울분을 토해내는 이들이 많다. 민주화를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두 사람 모두 ‘민주주의 위기’가 한창 논의되는 시점에 세상을 떴으니 참으로 공교롭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상’ 중임에도 국민과 국회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며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개념이 있는지 의심을 자아내는 발언을 쏟아냈다. 와이에스의 민주화 투쟁이 재평가되는 분위기 속에 ‘독재자 박정희’의 면모가 부각되자 박 대통령이 효심을 발휘해 국면전환을 시도했다는 세간의 수군거림도 나오는 판이다. 어쨌거나 박 대통령의 이런 발언들이 와이에스의 민주화 공로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불경스런 표현일지 모르지만 역시 ‘정치 9단’으로 불리던 양김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세상과 작별하는 그 순간까지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말이다.

양김의 진가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고 두 사람의 부재를 더욱 아쉬워하게 하는 이들은 박 대통령 말고도 많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주를 자처하고 있는 김무성과 ‘김대중 정치’의 승계자를 자임하는 박지원이 대표적 인물이다.

박지원은 얼마 전에 ‘호남의 배신감’ 운운하며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이 손잡으려는 움직임을 ‘영남연대’라고 표현했다. 안철수, 박원순은 지금도 호남에서 인기가 높다. 문재인도 지금이야 호남 지지율이 형편없지만 대선 때엔 호남에서 90%대 지지율을 올렸다. 박지원의 발언은 대다수 호남인의 뜻과 무관한 지역감정 부추기기다. 박지원, 아무리 다급한 처지라고 하지만 너무 나갔다. 평생 ‘호남의 굴레’에서 고달파했던 디제이가 박지원의 이런 발언을 들었다면 “당장 동교동 문중을 떠나라”고 호통치며 파문 선고를 내렸을 게 분명하다.

양김의 얼굴에 먹칠하기는 김무성도 마찬가지다. 다친 농민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이슬람국가(IS) 테러집단에 비유하며 척결을 외쳐댔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돌격대장으로 나서 질식해가는 민주주의의 숨통을 조이는 박 대통령의 충실한 조수 노릇이나 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겠다며 대표가 되더니 요즘엔 대통령 발언과 싱크로율 100%다. 와이에스가 이런 모습을 봤다면 아마 ‘칠푼이’라고 힐난할지도 모르니, 김무성, 차라리 ‘와이에스 문하생’이란 말이라도 안 해주길 부탁한다.

양김에게 ‘사욕에 가득 찬 표리부동한 정치인’이란 낙인을 찍으며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운 것은 군사정권이었다. 군사정권은 양김의 야욕에 의한 지역감정 악화로 사회분열, 정치혼란이 우려되니 나라 망하지 않게 하려면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다는 논리로 군부집권을 합리화하려 했다. 이후 ‘양김정치’는 청산과 극복의 대상으로 꼽히며 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부실함을 변명하는 알리바이로 작동했다. 온갖 정치병폐의 원흉이요, 정치 관련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됐다. 마치 양김정치만 사라지면 정치의 질곡이 해소되고 엄청난 정치발전이 이뤄지기라도 할 것처럼 난타당했다.

임석규 정치 에디터
임석규 정치 에디터
26일 치러지는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과 함께 양김정치도 종언을 고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양김이 떠났으니, 이제 선진 정치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해도 되는 걸까. 청와대를 봐도, 여의도를 봐도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양김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날 것 같다.

임석규 정치 에디터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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