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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응팔’…골목이여 응답하라 / 조현경

등록 2015-11-15 18:58

88서울올림픽 당시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당시 우리집은 서울 광진구(옛 성동구) 자양동 59번 버스 종점 옆 상가 1층 ‘물망초양품점’에 딸린 작은 가겟방이었다. 그 시절 나의 골목은 버스기사 아저씨들의 담배 냄새와 단골 아줌마들의 수다로 가득했다. 밤늦도록 바느질하고, 새벽이면 남대문 시장에서 옷을 떼어다 장사를 하시던 엄마 대신 연탄불을 가는 건 오빠와 나의 몫이었다. 어린이대공원에 놀러 갔다 데모하는 언니 오빠들과 엉키면서 최루탄 가스에 콧물 눈물 범벅으로 돌아온 날도 있었고, 정적이 흐르는 경기장을 가로지르는 굴렁쇠 소년을 보며 가슴 뭉클했던 것도 같다. <응답하라 1988(응팔)>이 소환한 나의 어린 시절이다.

처음 ‘응팔’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소위 386세대 청년들이 어떻게 그려질까 하는 호기심이 앞섰다. 하지만 응팔이 소환한 것은 아득히 멀어진 어린 날의 골목길과 먼지 낀 추억들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응답’ 시리즈 전작들이 97학번, 94학번 대학생을 대표 주인공으로 삼은 것과는 달리 ‘응팔’의 주인공은 88학번이 아니라 90학번이다. 그나마 주인공 성덕선(혜리 분)의 언니 보라(류혜영 분)가 87학번의 까칠한 운동권 학생으로 등장하지만, 학생운동이 전면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응팔’이 당시 시대정신과도 같았던, 사회 부조리와 권력 비리에 대한 청년들의 저항에 무심한 것은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응팔’의 드라마 배경인 도봉구 쌍문동의 골목길은 자양동의 골목길을 소환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전작들이 소위 잘나가는 대학생들이 향유하던 낭만적인 ‘대중문화’를 호출했던 것과는 결이 다르다.

어릴 적 내가 살던 골목은 재개발 탓에 쭉 뻗은 도로로 변해버렸다. 쫓겨나듯 동네를 벗어난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2년 단위로 새로운 동네를 기웃거리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도시화는 물질적 풍요를 위해 수많은 동네와 골목을 소멸시키고 있다. 마을에서 기능하던 경제 영역은 기업이 대체했으며, 마을이 담당했던 복지는 부분적으로 국가가 담당하게 됐다. 인간적 관계는 사라져가고 비인격적인 금전적 관계가 보편화됐다.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는 <다시 마을이다>에서 “미래의 주거 논의가 더는 집과 건축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 저널리스트 리처드 하인버그는 <제로성장 시대가 온다>에서 각종 자원의 고갈로 자본주의적 성장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며, 그 대안으로 ‘마을 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주체적이고 지속적으로 삶의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을을 되살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최근 ‘마을 공동체’를 새롭게 보고 그 가치를 활용하기 위해 마을기업이나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공동체회사 등을 모태로 한 마을 만들기가 활발하다. 특히 주민들이 지역의 유·무형의 자원을 활용해 일구어가는 마을기업은 2010년 6월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의 일환으로 시범 실시된 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17개 시·도에 1249개가 운영되고 있다. 마을기업은 ‘마을살이’를 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는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마을은 주민들의 자발성에 기초해 자체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이자 함께 거주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응팔’이 사라져가는 골목길과 마을 공동체의 가치를 소환해주길 기대한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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