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편향에서 벗어나 될수록 객관적인 결론을 찾아가는 지식으로서 그 권위를 쌓은 데에는 아무래도 오랜 전통으로 구축된 자정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요즘 다시 그런 점을 새삼 느낀다. 근래에 과학 연구물의 객관성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연구자의 편향을 줄이고 실험의 재현성을 높이자는 특집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말 영국 연구기관들은 연구자의 실수, 편향을 줄이고 재현성을 더욱 높인 연구물을 만드는 길을 모색하는 논의를 모아 <의생명과학 연구의 재현성과 신뢰성> 보고서를 펴냈다(goo.gl/j8tr4V).
이런 흐름이 커진 데엔 이 실험실의 결과가 저 실험실에선 잘 재현되지 않는, 즉 ‘재현성의 문제’에 대한 경고음이 의생명과학 분야 안에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실험 결과가 다 재현되는 건 아니며 재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의도적인 연구부정 탓인 것은 아니다. 연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연구자가 소홀히 다루거나 놓치고, 연구자도 모르는 사이에 편향에 빠지기도 하며, 또는 애초에 재현이 쉽잖은 변덕스런 자연현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언제나 실수와 편향은 연구자한테 경계의 대상이다. <네이처>엔 연구자도 모르게 빠져드는 편향 가능성을 지적하는 특집이 실렸는데, 편향의 이름도 가지가지다. ‘텍사스 명사수’의 오류라는 게 있다. 총알 자국들이 몰린 곳을 중심으로 나중에 과녁을 그려넣어 인식하는 식이다. ‘가설 근시안’의 오류도 지적된다. 자신의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만을 보면서 다른 가설의 가능성은 보지 못한다. 기대하던 데이터는 쉽게 통과하고 까칠한 데이터는 조목조목 따지는 식으로 행하는 ‘관심 비대칭’은 편향의 패턴을 만들 수 있다.
대학원생인 페이스북 친구가 학부 때 경험을 들려주었다. ‘흥미로운 가설을 세우고서 동물 실험을 했죠. 내 가설을 뒷받침하는 좋은 결과를 얻었어요. 그런데 편향을 회피하는 특별한 방법을 써서 한 반복 실험들에선 계속 뒤집혔죠. 나도 모르게 내 선호 취향이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잊지 못하는 경험이죠.’ 그는 “선호가 연구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자신의 선호를 확인해야 한다”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명언을 들려준다.
편향을 완벽하게 없앨 수 없다면 어떻게 줄일까? <재현성과 신뢰성> 보고서가 제시하는 방법 가운데 첫째는 개방성과 투명성이다. 데이터와 연구방법에 대해, 부정적인 데이터에 대해서도, 과학계에 충분히 개방적일 때 스스로 편향을 의식하며 문제를 줄일 수 있고, 지식은 점점 더 객관적이고 재현적인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나온 다른 보고서도 눈에 띈다. 미국 참여과학자연맹(UCS)이 미 국립보건원(NIH), 질병통제센터(CDC) 등의 연구자·기술자 6999명한테서 받은 설문응답을 분석해 <진일보와 남은 문제>라는 보고서를 냈다(goo.gl/89T7o9). 보고서는 정부 과학자들의 연구진실성과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선 판단·결정의 투명성이 더욱 요구된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객관성의 칼날을 벼리는 논의가 활발히 벌어지는 지구 저편의 흐름을 접하다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의 현실로 돌아올 때엔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온 기분이 든다. 과학 연구와 역사 연구가 다르겠지만, 객관성이 개방과 공유, 투명성을 통해 강화된다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가가 정한 한 가지 역사만 배우라는 발상도 시대착오이지만, 개방성과 투명성조차 무너진 채 진행되는 ‘편향에서 벗어난 객관적인 국정 교과서’ 구상은 너무나 주관적이고 모순적인 주장으로만 들린다.
오철우 삶과행복팀 기자 cheolwoo@hani.co.kr
오철우 삶과행복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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