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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158일째

등록 2015-10-12 18:41

만나기로 약속된 친구들이 다 모였다. 친구는 빙그레 웃으며 종이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선물을 가져왔어!”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목화솜’이었다. 기다란 가지 끝에 하얗고 몽글몽글한 목화솜이 맺혀 있었다. 우리는 하나씩 목화솜을 받아들었다. 친구가 에스엔에스에 올렸던 목화 화분 사진은 오늘 아침에 158일째라 적혀 있었다. 158일 동안에 친구는 씨앗을 물에 담가 발아를 시키고, 그걸 다시 흙에 심어 물을 주고 볕을 쬐게 하며 158일을 살았다. 매일 사진을 찍어 기록했다. 맨 처음 씨앗을 보여주었을 때 친구는, 이게 정말로 솜이 된다는 게 어쩐지 거짓말 같지 않냐는 표정이었다. 그러니 친구는 단지, 씨앗을 심어 그 열매를 수확하여 선물로 준 것이 아니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거짓말 같기만 한 현상 하나를, 마침내 믿을 수밖에 없도록 끝까지 지켜본 자의 희열을 우리에게 나눠준 것이었다. 목화솜 한 송이를 저마다 손에 들고 만지작대며 놀았다. 딱딱한 씨앗들이 그 속에서 만져졌다. 갈림길에 서서 작별인사를 나눌 때, 헤어지는 친구들의 얼굴보다 손에 들고 있던 동그란 목화솜이 더 얼굴들 같았다. 찌그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들고 집에 들어왔다. 주둥이가 작은 유리병에 꽂아주었다. 씨앗 하나를 조심조심 꺼냈다. 친구의 158일 동안의 정성이 깃든 목화솜을 애지중지 다루는 내 손길이 의식되어, 나는 빙그레 웃었다. 내년 봄이 오면, 나도 이 씨앗을 심을 것이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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