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폴크스바겐의 ‘추락’이 주는 교훈 / 이상호

등록 2015-10-11 18:51수정 2015-10-11 21:05

디젤차량 배기가스의 감지 소프트웨어를 조작하여 환경규제를 비켜가면서까지 미국 시장에서 자동차 판매량을 늘리겠다는 폴크스바겐의 ‘과욕’이 불러온 후과는 실로 참혹하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발표가 나자마자 폴크스바겐의 주가는 무려 35% 떨어지면서 시가총액 기준으로 약 33조원이 공중으로 사라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배기가스 감지장치의 조작은 명백한 경제적 범죄행위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이런 범죄에 대해 매우 엄격한 법적 잣대를 적용하는 만큼 징벌적 손해배상액만 무려 21조원가량으로 예상된다.

또한 폴크스바겐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자동차 1100만대 이상을 리콜해야 할 것으로 보이고 여기에 들어갈 수리비 추정액이 약 23조원에 이른다. 자매회사인 아우디와 슈코다 자동차 또한 수백만대가 동일한 디젤엔진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리콜에 따른 피해액은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폴크스바겐에 더 심각한 문제는 기업 이미지가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클린 디젤’의 선두주자로 친환경차 개발에 앞장서고 지속가능 경영과 사회적 책임 활동을 적극적으로 구사해 글로벌 기업으로 명성을 얻고 있던 폴크스바겐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전세계 소비자를 속인 ‘악덕기업’이 되어버렸다. 폴크스바겐이 감내해야 할 고통은 산술적으로 추산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고 치명적이다.

이런 이유로 누가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아마도 문제의 배기가스 감지장치의 개발과 조작에 관련된 이들은 처벌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은 전임 폴크스바겐 대표이사 마르틴 빈터코른을 비롯한 최고경영진이 이 사실을 미리 알았는지에 모이고 있다. 그는 사태를 수습하는 차원에서 대표직을 사임하면서 자신은 조작 사실을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른 이사회 구성원들도 마찬가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계 1위 자동차업체가 환경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조작하고 이러한 엄청난 경제범죄를 수년에 걸쳐 저질러왔다. 그런데 최고경영진 가운데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다는 말을 과연 누가 믿을 수 있겠나.

폴크스바겐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이면서 경영진 감시 의무가 있는 감독위원회도 이번 사건에 대한 면책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감독위원회가 조작 사실을 사전에 일부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배기가스 조작 사건이 발생할 당시 재무이사를 역임했던 한스 디터 푀치가 폴크스바겐의 대주주인 포르셰 가문의 후견에 힘입어 최근에 새 감독위원회 의장으로 선임되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일반인이 보기에 사건 발생의 궁극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최고경영진에 속했던 이가 진상규명의 총괄책임자가 된다는 것을 납득하기란 쉽지 않다.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이처럼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저감장치 조작 사건은 단순히 기술적 오류에 따른 자동차 리콜 사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전세계 시장에서 세계 1위를 향한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이 계속 과열되고 있는 현실에서 시장 확대는 기업의 절체절명의 경영 목표다.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어떤 수단도 정당시된다는 논리가 기업을 유혹하기 마련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경영을 보장할 수 있는, 투명하고 민주적 기업지배구조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과연 우리의 글로벌 대기업들은 이러한 유혹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가? 이것이 바로 이번 폴크스바겐 사태를 바라보면서 총수의 황제경영에 길들어 있는 재벌 대기업에 던지는 질문이다.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lshberlin0612@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도사·목사와 내란 [한승훈 칼럼] 1.

도사·목사와 내란 [한승훈 칼럼]

분노한 2030 남성에게 필요한 것 [슬기로운 기자생활] 2.

분노한 2030 남성에게 필요한 것 [슬기로운 기자생활]

가스 말고, ‘공공풍력’ 하자 [한겨레 프리즘] 3.

가스 말고, ‘공공풍력’ 하자 [한겨레 프리즘]

법원 방화까지 시도한 10대 구속, 누구의 책임인가 [사설] 4.

법원 방화까지 시도한 10대 구속, 누구의 책임인가 [사설]

[사설]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자경단’, 왜 이런 일이 사라지지 않나 5.

[사설]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자경단’, 왜 이런 일이 사라지지 않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