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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부디

등록 2015-09-23 18:37

추석에 고향집에 가기 위해 기차 승차권을 예매한 일을 친구는 무용담처럼 말했다. 예매 사이트에 로그인을 해서 3분 이내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강제 로그아웃을 당하고, 예약 요청 횟수도 6회로 제한되어 있어 신속하고 정확하게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고 했다. 예매가 개시된 날 오전 6시. 같은 시각에 일제히 로그인을 했을, 무수한 사람을 상상해보았다. 친구는 귀성길 기차 안에서 겪을 난리법석에 미리 한숨을 쉬었다. 그뿐일까. 고속도로의 승용차 행렬은 또 어떤가. 앉아 있을 시간 없이 연휴 내내 종종거릴 며느리들의 과도한 노동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빚어질 무신경한 언사들에 누군간 마음이 움푹 팰 것이고 누군간 한바탕 언성을 높일 것이고… 해마다 이만한 스트레스와 번잡함을 감내하면서도, 명절이면 어김없이 우리는 고향집에 찾아간다. 어르신들께 용돈을 드리기 위해 은행에 들러 새 지폐로 바꾸기, 푸짐하고 실속있고 근사한 선물 세트를 고심해서 고르기, 조카에게 줄 선물을 알뜰히 챙겨두기. 두 손 가득 선물들을 챙겨 들고서 집 앞에서 기차역까지, 고향역에서 고향집까지, 길에서 하루를 다 쓰며 가족을 찾아갈 친구의 모습을 그려본다. 부디, 전에 없던 살가움을 가족들과 실컷 나누고 왔으면 좋겠다. 오래오래 힘이 될 응원의 한마디를 듣고 오면 좋겠다. 부디, 아무도 안 보는 구석에서 울컥하며 치미는 울음을 삼키려고 애를 써야 하는 순간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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