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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혜정 칼럼] 국민과 난민 사이

등록 2015-09-22 18:41수정 2015-09-23 15:13

시리아 난민 세 살배기 아일란의 주검 사진으로 온 세계가 술렁이고 그 와중에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더 이상 일국주의가 아니라 세계주의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검색 중에 우연히 누군가 티브이에서 난민 인터뷰하는 것을 보면서 쓴 글과 마주쳤다. 시리아 난민이 한국에서 받아줘서 고맙다고 하고 있다면서 “이런 미친. 여기서 착한 척하는 사람들 어쩌고저쩌고 떠들더군요. 저 사람들이 뿌리는 염산에 맞아 봐야. 사랑 고백하는데 받아주지 않는다고 끌려다가 손도끼로 찍혀봐야 그 떠드는 입 다물 겁니다. 정말 이 나라 싫네요”라고 쓰여 있었다.

전세계가 난민을 거부하거나 수용하는 면에서 진영이 나뉘고 있다. 실업 상황과 복지, 고령화와 공론장의 수준이 주요 변수로 작용하는 듯하다. 덴마크에서는 이민을 제한하겠다는 공약으로 보수정권의 총리가 당선되었지만 시민들의 여론이 일자 그 원칙을 변경했다고 한다. 보호주의적 우파 정권이 난민을 내쫓는 것에 대해 시민들이 자기 집을 내놓겠다면서 초대를 하고 나선 것이다. 사회가 국민 개개인의 생존을 기본적으로 보장하는 복지체제가 마련된 경우, 국민들은 쉽게 적대적이 되지 않는다. 반면 그런 기반이 없고 쏟아지는 난민을 주체하기 어려운 동유럽 국가에서는 국경을 넘어가는 난민들 대상으로 적대지수를 높여가고 있다. 헝가리 국경지대 인접한 소도시의 젊은 시장은 난민을 협박하는 파시스트적인 동영상을 내보냈고 난민 어린이에게 발길질을 한 헝가리 여기자의 동영상은 세계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헝가리 집권당은 최근 불거지기 시작한 부패 문제를 숨기려고 국민들의 관심을 난민 문제로 돌리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이런 경우 예외 없이 포퓰리스트적 행보를 취하면서 혐오와 적대를 양산하는 통치 방법을 쓰게 된다. 이들은 대의를 말하는 ‘좌파’를 무능하거나 위선적인 사람으로 몰아가면서 대중들로 하여금 부패했지만 강력한 집권당에 안정감을 느끼게 만드는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불안과 공포가 심한 사회일수록 이 술수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실제로 헝가리에서는 난민을 보살피는 국민도 많지만 그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반면 이번 지구촌 현장에서 독일 국민들은 돋보이는 환대의 장을 펼치고 있다. 유권자의 88%가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응답했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를 전폭 수용했는데 이 결단의 이면에는 세계대전을 일으킨 데 대한 뼈아픈 성찰과 동서독 통일을 이루어낸 자신감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이 결정은 또한 실리적 결정이라며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리스크보다는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통일을 이루어낸 경험과 후쿠시마 사태 이후 탈핵을 국민적 합의로 이루어낸 데서 오는 자신감이 아닐까? 국민적 합의가 가능한 공론의 장이 튼튼한 독일은 일국을 넘어 글로벌 차원에서 공론의 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것이 독일의 도전일 것이다.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급속히 노령화되고 있고 전쟁의 위험이 꽤 가까이 있는 한국은 어떤가? 자국민 아이들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주제에 누구를 초대하느냐고 말도 꺼내기 힘든 분위기이다. 언제 난민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것을 잘 알기에 더욱 난민에게 적대적일지도 모르겠다. 국민과 난민의 차이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국민국가 안으로 편입되지 않는 삶을 상상하며 국가 바깥에 서보는 연습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혐오와 적대를 넘어선 공론의 장을 자체 안에 열어갈 수 있을 때 실리를 챙길 여유도 생기고, 탐욕적 정권과 위선적 정권이 주도하는 낙후된 정당정치를 넘어설 수 있고, 서구가 편협한 패권주의를 넘어설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한국 국민들이 난민을 환대해야 한다면 바로 이 이유 때문이 아닐까? 마침 오늘 아침에 손자와 들른 동네 카페 앞 칠판에는 이런 구절이 쓰여 있었다. “만인이 만인을 불신하고 각자 자신의 진실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데 각자의 진실보다 더 나쁜 거짓말은 없다.- 프레데릭 파작”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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