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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갈림길에 선 ‘북핵 해법 찾기’

등록 2015-09-21 18:42

발표 10돌이 된 9·19 공동성명의 내용은 지금 봐도 훌륭하다. 북한 핵 문제의 해법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한 구상까지 담겨 있다. 여전히 유효한 실천 원칙을 제시한 점도 되새겨볼 만하다. 관련국 모두의 동시행동이 그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그동안 북한은 세 차례 핵실험을 했다. 나아가 북한은 2012년 핵보유국임을 헌법에 명시했다. 미국은 오랫동안 사실상의 방관정책인 ‘전략적 인내’를 고수한다. 일정한 한계를 넘지만 않는다면 북한의 핵 계획을 사실상 묵인하는 것 같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속수무책이다. 최근 시사했듯이 북한은 네 번째 핵실험을 위해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파국을 향해 다가가는 양상이다.

지금의 선택지는 크게 셋이다. 첫째는 당장 9·19 성명의 정신에 따라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지난주 미국 의회를 통과해 발효를 앞둔 ‘이란 핵 협상’의 길이다. 미국은 김정은 북한 정권이 비핵화에 전혀 관심이 없어 대화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중도 실용주의자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핵 협상을 이끈 이란과 북한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대화를 해보지도 않고 예단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임기가 1년 반도 남지 않은 버락 오바마 정권으로선 정치적 부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질 수도 있다. 쿠바와 이란에 이어 대북 관계도 푼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는 금상첨화다.

둘째는 지금처럼 가는 것이다. ‘비협상 적대의 길’이다. 이는 ‘지난 20여년의 경험으로 볼 때 대북 핵 협상은 쓸모없다’는 판단과 상통한다. 궁극적으로 북한 붕괴론에 기댈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의 해법은 통일’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미국 강경파와 동일한 사고방식이다. 네오콘 중 한 명인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오래전부터 북한은 절대 핵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유일한 해법은 한반도 통일’이라고 했다. 미국 강경파에게는 북한이라는 적이 필요하다. 수시로 되풀이되는 한반도 위기는 일정한 수위를 넘지 않는 한 미국의 패권 유지에 도움이 된다. 물론 그 부담은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

셋째는 미국의 새 정권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통합 해법’을 찾는 것이다. ‘페리 프로세스’의 길이다. 빌 클린턴 미국 정부는 1998년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푸는 방법을 찾기 위해 윌리엄 페리를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국방장관으로 있던 1994년 1차 북핵위기가 발생하자 항공모함을 동해에 파병하고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려 했던 강경파다. 하지만 그가 관련국과의 폭넓은 접촉을 거쳐 1999년 10월 작성한 보고서는 이후 클린턴 정부 대북정책의 뼈대가 됐다. 오바마 정부가 신망 있는 인사를 지명해 포괄적인 대북정책을 수립한다면 그 자체로 상황 악화를 막으면서 핵 문제 해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최선은 첫째다. 미국-이란 핵 협상도 실제로 타결되기 전에는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문제는 동력과 시기다. 미국이 새로운 시도를 하더라도 북한이 조만간 핵실험을 해버린다면 동력이 사라질 수 있다. 핵 문제 해결 의지를 분명히 하고 빨리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현실을 인정한 뒤 동시행동의 원칙을 갖고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곧 있을 미-중 정상회담과 다음달 한-미 정상회담이 핵심 계기다. 두 정상회담에서 명확한 신호를 보지 못하면 북한은 새 핵실험 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크다. 셋째 길은 첫째 길의 성패에 따라 생각해도 늦지 않다. 당시 상당히 진척됐던 페리 프로세스는 정권이 바뀌면서 힘이 빠졌지만 이후에도 6자회담 등을 통해 대북 협상의 기본 틀로 작용했다.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지금 핵 문제 해결의 가닥을 잡지 못하면 ‘잃어버린 10년’이 적어도 몇 년 더 연장되면서 사태가 더 악화할 것이다. 그때 되돌아보면 박근혜 정부의 북핵 해결 노력 없는 통일 드라이브가 얼마나 허황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당장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많은 게 달라진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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