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는 지난 2월16일 울산 현대차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0년 넘게 묵은 비정규직 문제를 울산(비정규직)지회와 현대차 사쪽이 직접 교섭으로 해결하자”고 촉구했다. 연합뉴스
[야! 한국사회] ‘숙련 비정규직’ 싸게 쓰기
전국금속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 사업을 담당하고 있던 2008년이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으로 3일간 현장 실습을 나갔다. 포터를 만드는 4공장에 배치됐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1톤 트럭이 들어오면 전조등과 깜빡이등을 조립하고 가스를 주입하는 공정이었다. 왼쪽은 정규직이, 맞은편은 사내하청 노동자가 일했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점차 일이 손에 익어 어렵지 않게 실습을 마쳤다. 2만개의 부품이 들어간다는 자동차는 엔진 주조처럼 오랜 숙련과 기술이 필요한 분야도 있지만, 1~2년 정도면 충분한 단순조립 공정이 많다.
현대자동차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정규직 6만827명, 계약직 4129명, 간접고용 1만816명이 일한다. 이 중 간접고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내하청은 현대차에 큰 골칫거리였다. 노동계는 위장 도급 또는 제조업에 사용이 금지된 파견 계약이라고 주장했고, 재계는 합법적인 도급 계약이라고 맞섰다. 2010년 7월22일 대법원이 자동차의 사내하청 노동은 불법 파견이라고 판결해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현대차는 사상 최대 규모 정규직 소송에 휘말렸고, 정몽구 회장은 수차례 파견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했다. 현대자동차는 불법 파견의 대명사가 됐다.
현대차 계약직도 불법 도마에 올랐다. 회사는 정규직이 일시적으로 비운 자리에 계약직을 사용한다고 했다. 2011년 37명이던 계약직은 4년 만에 4천명으로 100배 늘었다. 그런데 이들은 2년이 되기 직전에 공장에서 쫓겨났다. 최근 중앙노동위원회는 23개월 동안 16차례 쪼개기 계약으로 일을 시킨 뒤 해고한 사건에 대해 정규직으로 복직시키라고 명령했다. 현대차 사내하청과 계약직은 싼값에 맘껏 쓰고 버릴 수 있지만, 불법 논란을 낳는 ‘계륵’ 같은 존재였다.
그동안 재계는 제조업에 파견을 자유롭게 쓰게 해달라고 했다. 기간제 사용기간도 없애라고 주장했다. 8월31일 경제 5단체는 “제조업 등에 파견을 허용하여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고용 확대를 유도해야 한다”는 ‘노동개혁에 대한 경제계 입장’을 발표했다. 정부는 재계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35살 이상 기간제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고, 55살이 넘으면 제조업까지 파견을 모두 허용하겠다고 했다. 9월13일 민주노총이 빠진 노사정위원회는 실태조사와 토론회를 통해 “합의사항은 정기국회 법안 의결 시 반영토록 한다”고 합의했다.
정부 뜻대로 법이 바뀌면 자동차공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계약직을 쓰다 4년이 되기 전에 내보내도 2년 이상 숙련된 비정규직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청년들은 3~4년마다 현대에서 기아로 공장을 떠돌며 일하게 된다. 고숙련을 요하는 공정에는 퇴직한 기술자를 파견받아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다. 모든 공정에서 숙련된 비정규직을 싸게 쓸 수 있기 때문에 정규직을 뽑아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현대차 노사가 비정규직 2천명 특별채용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2003년 7월 비정규직노조를 만든 지 12년 만이다. 불법을 바로잡기 위해 싸운 조합원들 대부분이 정규직이 된단다. 정몽구 회장에 대해 탄원서까지 쓴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규직으로 뽑혀간 자리는 계약직이나 다른 사내하청이 대신했다. 공정을 정규직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채용이 완료돼도 현대차에 1만3천명의 비정규직이 남는다.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10년 동안 벌어졌던 노동계와 재계의 대리전, 함께 연대하고 응원했던 역사가 비정규직 일부의 신분 상승으로 끝나고 마는 것일까? 정부와 재벌이 싼값에 숙련된 비정규직을 마음껏 쓰는 ‘노동개혁’을 한다는데, 노조도 없는 90%를 위해 누가 같이 싸울 수 있을지 걱정이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이슈노사정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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