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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문장의 기술

등록 2015-09-14 18:31

카프카가 <변신>을 썼을 때, 마르케스는 변신이 상징하는 바가 현대사회의 어떤 징후인지는 궁금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그레고어 잠자가 변신한 그 벌레를 카프카가 어떻게 묘사했는지, 그 벌레는 어떤 벌레인지가 너무도 궁금했다고 했다. 그게 문학의 입장이다. 카프카가 무얼 말하고 싶은지가 아닌, 카프카가 무얼 보여주고 싶은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문학은 “왜 이걸 쓰고 있지?”보다 “내가 왜 이렇게 쓰고 있지?”에 대해 더 고민한다. 그래서 문장이 목숨이다. 토씨 하나로 문장에 폭풍을 일으키고 잠재운다. 안이한 문장은 작가의 나태를, 파리한 문장은 작가의 비겁을 적시하고야 만다. 그러니, 문장의 기술은 반드시 익혀야 한다. 연장을 다루는 여느 장인들처럼 말이다. 더 나은 기술이 더 나은 상상력을 기어이 가져온다. 여느 과학처럼 말이다. 기술의 뒷받침 없는 상상력은 엉터리 아니면 망상이 되기 쉽다. 기술이 상상력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에는 기술을 연마한다면 누구나 문학을 해도 된다는 관용도 포함돼 있다. 그럼으로써 문학은 환대를 구가하는 희귀한 세계로 우리 곁에 잔존해 있다. 오늘도 나는 이 관용과 환대의 세계에서 갈팡질팡했다. 한 문장을 썼다 지우며 하루를 다 썼다. 어떤 조사는 너무 가두어 답답하고, 어떤 부사는 너무 낯익어 실감이 약했다. 어떤 문장은 평이하고 어떤 문장은 모호했다. 나를 넘어서는 야릇한 문장 하나를 궁리하느라 일주일을 다 써버렸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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