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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비비안과 슈가맨

등록 2015-09-09 18:29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평생 동안 남의 집 유모로 전전하며 살았고, 아무도 그가 사진을 찍는다는 걸 몰랐다. 사진을 필름 상태로만 간직했기 때문이다. 경매시장에서 우연히 유품을 낙찰받은 이가 산더미 같은 그의 필름을 인화했다. 그리고 그는 미술시장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서 자신이 만났던 사람과 목격했던 장면들을 하루하루 앵글에 담는 것, 그의 예술활동은 단지 그게 전부였을 뿐이었다. 다큐멘터리 <서칭 포 슈가맨>이 떠올랐다. 슈가맨은 미국에서 앨범을 냈지만 몇 장 팔리지 않고 실패했다. 복제한 그의 노래가 우연히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흘러갔고, 그곳에서 그의 노래는 널리 퍼져갔다. 민주화 투쟁 과정 중에 그의 노래는 각별히 사랑받았고, 남아공의 역사와 함께했다. 슈가맨이 추앙받는 전설이 되어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을 때, 그는 음악을 접고 지구 건너편 미국의 디트로이트에서 일용 노동자로 살고 있었다. 남아공에서부터 그에 대한 추적이 시작되어 슈가맨을 찾아냈고, 그는 남아공에서 딱 한번 공연을 했다. 그리고 다시 살던 자리로 돌아갔다. 비비안 마이어를 통해 슈가맨을 떠올리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비비안 마이어가 인스타그램을 한다면? 만약 슈가맨의 음원이 인터넷으로 유통이 된다면? 우리는 모두가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시대이면서 아무도 전설이 될 수는 없는 시대를 산다. 예술은 왜소해져가고 활동은 비만해져간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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