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였다면 지금 나는 아바나의 오비스포 거리에 앉아 두리번거리며 행인들을 구경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몇번씩 마주쳐 통성명을 한 동네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단골 커피집도 확보해 두었을 것이다. 예정대로였다면 지금 나는 그곳에서 단행본의 원고 정리를 끝내고, 교정지 파일을 받기 위해 인터넷이 가능한 장소를 찾아 헤맬 것이다. 어쩌면 멕시코나 콜롬비아 같은, 인터넷 환경이 나은 나라로 떠나려고 궁리할 것이다. 예정대로였다면 그랬을 텐데, 지금 나는 엉뚱하게도 경기도의 어느 대학에서 야외 의자에 앉아 옥수수수염차를 홀짝이고 있다. 소나무숲에서 풍겨오는 솔향기와 힘없이 우는 매미 소리에 코와 귀를 내주고 앉아 있다. 예정에 없던 곳에서 예정에 없던 일을 하면서, 예정대로였다면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예정했던 곳에서 예정했던 일을 한 적보다는 예정에 없던 곳에서 예정에 없던 일을 한 적이 훨씬 많았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예정에 없던 장소는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낯설고 더 의아하다. 지금 이곳도 한적한 곳의 여느 편의점처럼 야외 파라솔이 있고, 그 아래에 플라스틱 의자가 있다. 내 옆 의자에는 이십대의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방학 어떻게 보냈어?” 하며 음료수를 나눠 마신다. 나는 예정에 없었던 곳에 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을 신기해하며 낯설게 관찰을 하는 중이다. 가본 적 없는 오비스포 거리에서처럼.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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