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대박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남북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하나가 된다면 대박이지만 어느 한쪽의 굴복이나 붕괴를 전제로 한 통일은 재앙이다. 불행하게도 박근혜 정부는 후자 쪽에 기운 듯하다.
북한 붕괴론의 역사는 짧지 않다. 1990년대 들어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북한 붕괴론이 대두했다. 동독과 소련이 무너졌으니 같은 사회주의체제인 북한도 결국 붕괴할 것이라고 ‘희망’한 것이다.
북한 붕괴론은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뒤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그해 8월 김영삼 대통령은 “남북의 체제 경쟁은 끝났다”며 “언제 갑자기 통일이 눈앞에 닥쳐올지 모른다”고 말해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언급했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북한과의 접촉 자체를 기피했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며 북한의 붕괴를 기다렸다. 북한의 붕괴론에 군불을 땐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었다. 김 위원장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한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6월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라며 통일 재원 마련을 위한 통일항아리 사업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도 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20대의 나이로 3세 세습을 하자 국정 경험이 없는 20대 지도자가 과연 북한을 제대로 이끌겠느냐는 회의론이 일면서 북한 붕괴론은 더욱 힘을 얻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통일 대박론’을 거론하며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한 것도 북한 붕괴론의 연장선에 있다.
역대 보수정권이 북한 붕괴론에 매달린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그대로다. 휴전선과 서해상에서는 군사적 긴장이 계속되면서 크고 작은 충돌이 끊이지 않고, 남북관계는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채 소모적인 공방만 거듭하고 있다. 물론 북한이란 상대방이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와 비교해보면 남북관계 악화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북한 붕괴론부터 포기해야 한다. 북한은 결코 동독이나 소련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남북한과 동서독은 역사적 경험이나 국제정치학적 조건이 전혀 다르다. 북한의 경제 사정도 최악을 벗어나고 있고,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 수준도 나아지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군사력을 동원해 북한을 붕괴시킨다는 건 더욱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6·25전쟁을 통해 어느 한 체제가 다른 체제를 무력으로 굴복시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경험했다. 남북한 합쳐 100만명이 넘는 희생을 치르고서야 얻은 교훈이다. 우리가 아무리 군사력이 북한보다 우세하다고 해도 전쟁을 통한 통일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두 나라 모두에 재앙이다.
현재 북한의 경제 수준은 국민총소득(GNI) 기준으로 남한의 40분의 1도 안 될 정도로 아주 열악한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통일이 된다면 우리 경제가 북한을 감당할 수가 없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현재 상태로의 북한 붕괴는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다.
설사 북한이 붕괴한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귀속된다는 보장도 없다. 우선 북한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며, 미국 또한 우리 희망대로 움직여줄지도 의문이다.
그런데도 보수·우익 정권이 계속해서 북한 붕괴론에 기댄 대북정책을 펴는 것은 그들의 타고난 속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보수정권의 기본 속성은 반공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민주주의보다 반공을 우선시한다. 이들에게 통일이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뜻한다. 결국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하는 통일을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보수정권이 북한 붕괴론이란 망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평화통일은 불가능하다. 지금 보는 대로 끝없는 남북 긴장과 군사적 충돌만 되풀이될 뿐이다. 남북은 이번에 모처럼 고위급 회담을 통해 휴전선 충돌 사태 해결에 대한 극적인 타협점을 찾았다. 이를 계기로 박근혜 정부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군사적 충돌의 재발 방지 차원을 넘어 더 큰 진전을 이루길 기대한다. 북한 붕괴론을 당연히 폐기해야 할 것이다. 그 길만이 진정한 통일 대박을 이루는 길이다.
편집인 twin86@hani.co.kr
정석구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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