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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500일

등록 2015-08-24 18:37


내비게이션 명칭검색에 ‘단원고’를 찍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앞차의 뒷유리에 노란 리본 스티커가 보였다. 벌써 안산이구나 싶었다. 노란 플래카드들에 새겨넣은 문장들을 읽다보니 단원고가 보였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일어난 지 500일이 되었다. 단원고 1층 로비에는 열두번째 304 낭독회가 마련돼 있었다. 2학년 교실로 올라갔다. 거의 모든 책상 위에 국화가 놓여 있는 교실. 맨 뒷자리에 혜선이가 보였다. 혜선이 대신에 노란 방석이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았다. 혜선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책상 위에 놓인 ‘기억의 공책’을 펼쳐 빈 페이지를 열었다. 펜을 들어 “혜선아”라고 적어 보았다. 작년 11월21일, 혜선이가 없는 혜선이의 생일잔치에 나는 시를 써서 혜선이를 대신했다. 생일시를 쓰느라 며칠을 혜선이의 마음이 되어 혜선이로 지냈다. 편지를 다 쓰고 공책을 덮은 후, 교문 앞 편의점에서 사온 시원한 과일주스를 책상 위에 두었다. 혜선이의 짝꿍 책상 위에도 같은 주스를 올려두었다. 혜선이가 되어 교실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이 명예졸업을 할 때까지는 이 교실이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이 장소에서는 500일의 시간도 닷새와 같아진다. 모든 참회와 후회를 온전히 열 수 있다. 진실을 신랄하게 마주할 수 있다. 기억하겠다는 맹세와 달라지겠다는 각오란 게 이 버거운 마주침 없이 가능할 리 없다. 세번째 와보는 교실이었다. 처음엔 멀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아주 가까운 것 같았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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