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0년 갈릴레오는 자신이 고안한 망원경을 통해 종이 위에 투영된 태양의 모습을 관찰하고서 태양 표면의 ‘검은 얼룩’에 관한 자세한 관측 기록을 남겼다. 그가 남긴 흑점 그림은 근대과학의 유물이 됐다. 지상계와 달리 천상계는 완전하고 불변한다는 중세적 믿음을 깨는 관찰이었다. 태양 흑점은 이렇게 새로운 과학을 알리는 증거로서 등장한 이후에도 수많은 아마추어·직업 천문인 덕분에 400년 넘게 관측 기록으로 이어지고 있다. 종결되지 않은 채 진행중인 흑점 관측은 빠른 과학과 대비되는 느린 과학(슬로 사이언스) 중 으뜸으로, 2013년 <네이처>에서 선정되기도 했다.
400년 된 느린 과학의 기록에 적잖은 변화가 생길 모양이다. 최근 국제천문연맹(IAU) 총회에서 벨기에·미국 연구진은 그동안 역사 자료로 쓰인 흑점 기록에 오차가 있다면서 오차를 될수록 줄이는 방법을 사용해 보정한 기록을 ‘태양 흑점 수 2.0’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특히 주목받은 것은, 이렇게 보정하고 보니 지구온난화가 인간 활동 탓이 아니라 태양 활동 탓이라고 주장하는 기후변화 회의론의 근거가 약화됐다는 점이었다. 태양 활동이 1700년대 이래 점점 활발해져 20세기 후반 극대기(그랜드 맥시멈)에 이르렀다는 기존 가설과 달리, 흑점 2.0에서 그런 상승의 경향은 나타나지 않았다. 새로운 흑점 계수 방법과 보정 기록이 태양 날씨 예보나 기후변화 연구 등에 적용되면 새로운 해석도 적잖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관측 기록인 흑점 수를 왜 보정해야 한다는 걸까? 흑점 기록을 보정하기까지 과정을 설명하는 자료들에선 태양 흑점이 이제 지구 생활에도 중요한 기록이며 흑점 수는 민감한 관심사가 되었음을 볼 수 있다.
태양 흑점은 태양 내부의 자기력 요동이 표면에 드러나 강한 자기력 다발들이 모인 곳을 가리키는데, 이런 곳은 열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 온도가 낮고 그래서 지상에선 다른 곳보다 어둡게 보여 ‘흑점’이란 이름을 얻었다. 흑점이 많을수록 태양 활동도 활발하다. 이때엔 태양 표면 폭발도 잦아져 고온 플라스마 입자를 실은 태양풍이 강해진다. 민감한 인공위성이나 전자기기가 영향을 받을 수 있기에 태양 날씨 예보는 어엿한 한 분야가 되었다.
흑점 기록은 기후변화 연구에도 쓰인다. 긴 역사로 볼 때, 1645~1715년에 흑점 극소기와 소빙기가 겹쳐 나타났듯이, 소빙기 이후에 흑점이 20세기 후반 극대기로 나아감을 보여주는 기존 기록은 지구 기온 상승이 태양 활동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는 가설이 제기돼 왔다.
흑점에 관심이 높아질수록 계수의 정확성은 쟁점이 됐다. 누가, 어떤 망원경으로 관측했느냐, 흑점을 어떻게 셌느냐에 따라 흑점 수가 달라졌음이 역사 문헌에서 드러났다. 관측자가 나이가 들수록, 다른 활동을 겸할 경우에, 성능 낮은 망원경을 썼을 때 흑점은 적게 기록됐다. 흑점 무리와 개별 흑점을 어떻게 세느냐도 중요했다. 이렇게 오차 가능성이 있다 보니 국제적인 흑점 기록으로서, 스위스 천문학자 볼프가 관측법을 체계화해 1849년 시작해 이어진 기록 계열과 이와 다른 방법으로 계산하는 미국 중심의 기록 계열에선 상당한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두 계열의 흑점 기록을 통합한 ‘태양 흑점 수 2.0’으로 인해 기후변화 회의론은 중요한 근거 하나를 잃게 됐다. 물론 이번 결과가 관측 오차를 충분히 수정한 것인지는 앞으로도 논란거리가 될 듯하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연구진이 ‘2.0판’이라 명명했듯이 50억년 된 태양의 흑점을 연구하는 400년 된 느린 과학은 종결 없이 계속 이어질 테니.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cheolwoo@hani.co.kr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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