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시오노 나나미의 망언이 파문을 일으켰다. “네덜란드 여자들까지 위안부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큰일”이니 그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게 하라는 글이었다. 인종주의자의 면모까지 겸비한 일본 극우파 군국주의자의 본 모습을 독서 대중이 비로소 인지하게 되었다. 한때 각광을 받았던 그의 <로마인 이야기>의 폐단을 부각시키고자 나는 이 칼럼을 통해 콜린 매컬로라는 이미 널리 알려진 작가의 덜 알려진 로마사 시리즈를 소개한 바 있었다.
그 칼럼의 효과였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독자의 외면 속에 발간이 중단되었던 그 대하소설을 한 출판사에서 다시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왔고, 드디어 얼마 전에 그 7부작의 1부인 <로마의 일인자>가 발간되었다. 1부에 불과하나 세 권에 이르고 게다가 ‘가이드북’까지 딸려 있다. 방대한 분량에 선뜻 읽기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일단 시작하니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빨려 들어간 이유는 명확하다. 고증과 집필에 3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던 만큼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인물과 사건은 역사적 진실에 충실하다.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3천만부 이상 팔린 <가시나무새>의 저자의 필치로 가다듬어졌으니, 역사와 문학이 어우러져 숙성된 향취를 이 소설만큼 느낄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등장인물의 공적 임무는 사적 생활과 연결되고, 대외 전쟁은 국내 정치와 이어진다. 게다가 계급들 사이의 투쟁이 계급 내부의 갈등을 배제하지도 않는다.
그런 한편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 세력에 대항해 민중 전체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신진 세력에 지지를 보내는 역사관을 피력한다. 한마디로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던 시대의 격변을 거시적으로 보면서도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직시할 수 있는 많은 실마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대작이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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