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간장을 사러 동네슈퍼에 갔다. 식구가 적어 간장을 가끔 사다보니, 늘 처음 보는 상품들이 많다. ‘자연 그대로’ ‘무첨가’ ‘자연숙성’ 등 포장 앞면의 수식어는 엇비슷해 상품 선택에 별 도움이 안 된다. 포장 뒷면 식품유형, 원재료명과 함량에 써진 ‘양조간장’ ‘혼합간장’ ‘산분해간장’을 보니 더 헷갈린다. ‘바른’ 간장 하나 사기도 쉽지 않다니 ‘대략 난감’이다.
비단 간장만이 아니다. 자주 먹는 식용유, 음료, 라면 등 많은 식품이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제대로 알기 어렵다. 식용유는 원재료인 콩이 유전자변형 농산물(지엠오)인지, 제조방식이 참기름처럼 원료를 직접 짜는 압축인지, 아니면 화학물질로 콩을 녹이는 정제인지 표기가 명확하지 않다. 무가당, 또는 과즙 100% 음료로 표기해놓고는 인공감미료 등이 들어 있다. 라면에 든 맛베이스는 성분을 알 수가 없다. 식품표시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생각지 못한 정보들이 숨어 있다. ‘우리는 도대체 무얼 먹고 있는 걸까’ 불안해진다.
문제는 ‘불완전한’ 현행 식품표시제에 있다. 2006년부터 가공식품 속에 든 첨가물을 포함한 모든 원료를 표기하는 식품완전표시제가 시행됐다. 하지만 시행 초기부터 업체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송송 뚫려 있다며 반쪽짜리라는 지적을 받았다. 일괄표시제나 표시 면제 등 예외규정이 많기 때문이다. 일괄표시제란 여러 가지 첨가물을 넣어도 사용 목적이 같다면 하나의 용도만 적으면 되는 제도다. 최종 제품에 남아 있지 않은 원료도 표시할 필요가 없다. 또 두 가지 이상의 원료나 첨가물을 섞은 복합원재료도 표기의무에서 빠진다.
올해 초부터 시행된 지엠오 표시제도 제한적이긴 마찬가지다. 앞으로 지엠오를 식품 원료로 사용하면 함량에 관계없이 지엠오 사용 여부를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하지만 최종 제품에 ‘지엠오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으면 표기하지 않아도 된다. 지엠오 옥수수로 만든 올리고당, 물엿이나 지엠오 콩으로 만든 간장, 콩기름 등은 지엠오 표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소비자들이 직접 나서 식품표시제 개선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 조합원들이 예외규정이 많은 식품첨가제 표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이들은 예외조항이 많은 식품 표시 제도로는 수입 농산물로 만든 식재료들의 안전성 여부를 알기 힘들기에 온전한 ‘완전표시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합원 2000명 참여를 목표로 1만원씩 모아 직접 캠페인 광고를 만들어 공개한다. 다음주엔 토론회를 개최하고 10월엔 축제도 연다.
국제적으로도 소비자단체가 식품표시제를 강화하도록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소비자단체의 요구를 수용해 영양소, 칼로리, 성분 등을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 알기 쉬운 표기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스페인에선 소비자들의 힘으로 과즙 100%라고 표기된 과장 광고를 못하게 했다. 미국 버몬트주는 지엠오 원료를 0.9% 이상 쓰면 내년부터 지엠오 표시를 하게 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부터 식품안전을 강조했다. 하지만 반쪽자리 ‘식품완전표시제’로 소비자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한편에서는 수십가지 식품첨가물을 모두 표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소비자 불안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주장한다. 메르스 사태는 불투명한 정보공개가 얼마나 큰 혼란과 피해를 낳을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기업은 제품정보 제공의 책임을 다하고 선택은 소비자의 몫으로 넘겨야 한다. 식품완전표시제가 온전해져야 하는 까닭이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hslee@hani.co.kr
이현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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