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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화분의 반역

등록 2015-08-12 18:39

화분이 깨졌다. 저쪽 창가에 놓여 있던 화분이었다. 바람도, 창가의 커튼도 가만히 있던 오전이었다. 화분이 낙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서랍장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다만, 화분의 절반이 떨어져나간 채 방바닥에 산산조각이 났다. 한쪽이 떨어져나가니, 화분은 단면을 드러냈다. 허연 뿌리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화분 가득 징그러울 정도로 꽉꽉 차 있었다. 너무 크게 자란 뿌리가 원인인 것 같았다. 작아져버린 화분을 견디다 견디다, 뿌리가 반역을 일으킨 것이 분명해 보였다. 꽁꽁 갇혀 있던 이것이 안쪽으로부터 발산되는 힘만으로 이토록 단단한 그릇을 터뜨리려면, 대체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했던 걸까. 갇힌 힘. 갇힌 힘이 남모르게 커져간다는 것. 그리하여 기어이 자신을 가둔 것을 부순다는 것. 뿌리가 커져가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가둔 세계를 부숴버릴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걸, 오늘 나는 목격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여기저기 흩어진 화분 조각을 치우다가 내 방을 둘러보았다. 극락조화는 돌돌 말린 새순을 꼿꼿이 세우며 지금 새 식구를 잉태하는 중이다. 깻잎은 누렇게 시들다가 다시 살아나는 중이다. 마리안느는 날마다 한 장씩 새잎을 만드는 중이다. 내가 ‘천사’라고 부르는 이름 모를 이파리는 영생을 흉내내는 것만 같다. 산책하다 꺾어온 손톱만한 들풀인데, 시들 때까지만 바라볼 요량으로 물도 준 적이 없이 장난감 같은 화병에 꽂아둔 것인데, 1년이 넘도록 푸르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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