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재난경보가 울렸다. 폭염특보가 내려졌으니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러잖아도 외출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냉커피를 손에 들고 창문 바깥을 내다보던 참이었다. 오늘 중으로 서류를 보내야 할 일이 있어 외출을 해야만 했다. 폭염에 감금당한 기분도 마땅찮았다. 동사무소를 찾아갔다. 주민등록등본도 떼야 하고 여러 대학에서 증명서들을 발급받아야 했다. 서류를 신청하고 발급을 기다렸다. 손님이 아무도 없는 늦은 오후, 직원들은 창문에 옹기종기 모여 바깥을 내다보았다. “소나기가 온댔는데”, “그럼 특보도 풀릴까?”, “와, 우리 여섯시에 퇴근하게 되는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특보 풀리면 내가 쏠까?” “진짜?”……. 창문에 모여 있는 직원들의 뒷모습은 마치 소풍날 아침 비 내리는 창문을 내다보는 아이들과 같았다. 비가 내려 원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비가 내리지 않아 원망스러운 모습이라는 점만 달랐을 뿐이었다. 동사무소 입구에 부착된 ‘무더위 쉼터’라는 안내판이 기억났다. 평상시에는 오후 6시까지, 폭염특보가 시행되어 밤 10시까지 연장운영을 한다 했다. 동사무소를 무더위 쉼터로 활용하고 있는 주민은 단 한 명이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었고 에어컨 앞에서 코를 골며 단잠을 자고 있었다. 드디어 세차디세찬 소낙비가 마구 쏟아졌다. 직원들은 서로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탄성을 질러댔다.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나도 빙그레 웃었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