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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김무성의 미래, 한국의 미래

등록 2015-08-03 18:20수정 2015-08-31 17:11

지도자는 구성원들의 평균 수준을 넘기 힘들다. 구성원 개개인의 양심이나 지적, 정신적 수준의 총합이 지도자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최근 미국 방문을 통해 그것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를 살려주신’ 워커 장군 묘지에 큰절을 하고, ‘중국보다 미국’이라고 말해 논란을 자초했다. 김 대표가 한-중 관계의 중요성을 몰라서 그런 언행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늘 힘 가진 자를 좇는 한국 보수·우파의 행태가 그런 식으로 표출됐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주류 세력인 이른바 보수·우파는 늘 힘 있는 편에 서왔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을 추앙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빌붙어 영화를 누렸다. 해방이 되자 다시 미국 편에 서서 그들의 권력을 유지했다. 그런 변신 이유에 대해 온갖 현란한 지정학적 상황 논리를 들이대지만 한마디로 그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한국 보수·우파한테 미국은 곧 그들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정의이다.

국내 정치에서도 이런 힘의 논리가 철저히 관철되고 있다.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 1위인 김 대표도 대통령의 권력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 신세다.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다. 현직 대통령의 눈 밖에 났다간 차기 대선 후보가 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권력에의 복종은 그들의 유전자에 면면히 흐르는 기본 속성이다. 이런 보수·우파에 ‘계급장 떼고 논쟁’ 같은 걸 기대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끊임없는 이념 논쟁을 불러일으켜 자신들과 이해를 달리하는 세력을 배제시키는 것도 한국 보수·우파의 특징이다. 그들한테서 진정한 보수의 기본 가치인 아량과 포용 등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우리 사회 대부분의 권력을 장악하고도 자신을 갖지 못하고 늘 불안해한다. 진정한 보수의 기치를 내걸고 정당한 경쟁을 통해 장악한 권력이 아님을 스스로 알기 때문일까.

김 대표는 이번 방미 기간에도 ‘진보좌파 세력 준동’ 운운하며 편가르기에 나섰다. 그러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는 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꾸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자신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국민들의 머릿속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바꾸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다양성을 기본 원리로 하는 민주주의와는 양립하기 힘든 전체주의적 정치관이다.

한국 보수·우파는 체질적으로 친자본, 반노동적이다. 그들의 뿌리를 보면 당연한 일이다. 손에 흙 묻힐 일 없던 조선 사대부들에겐 노동이란 아랫것들이나 하는 천한 일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빌붙은 일부 고급 관리나 대지주들에게도 노동자는 그저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이런 구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의 보수·우파에게 노동자란 대등한 처지에서 상호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다. 기업의 이익 창출에 충실히 기여할 때만 그 존재를 인정받았다.

김 대표가 정권 잃을 각오로 하겠다고 말한 노동개혁도 그런 맥락 속에 있다. 그가 말한 노동개혁의 핵심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업들이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이윤이 늘어나 기업이 살고, 일자리도 생기고, 경제도 살아난다는 논리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수·우파 정권이 추진했던 친기업, 반노동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돌아보면 이는 눈속임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50%가 넘고, 정규직의 권한은 점점 축소되고, 그사이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만 쌓아둔 채 투자는 않고 있다. 그런데도 노동자의 처지를 점점 더 열악하게 만드는 ‘노동개혁’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게 한국 보수·우파의 현재 모습이다.

정석구 편집인
정석구 편집인
이런 속성을 갖는 보수·우파가 우리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불행이다. 김 대표는 이번 방미에서 자신이 한국 보수·우파의 대표주자임을 확인하고, 귀국 뒤 보수·우파의 과제를 과감하게 실행할 것임을 당당하게 천명했다. 김무성의 미래는 밝아졌을지 몰라도 한국의 미래는 더욱 암담해졌다.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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