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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철우의 과학의 숲] 실험실의 양성 균형 맞추기

등록 2015-07-23 18:51수정 2015-08-04 00:51

과학 지식에서도 간혹 남녀 차이에 관한 인간사회의 편향이 발견되곤 한다. 과학은 객관적인 지식을 추구하지만 실험과 연구에 알게 모르게 뿌리깊은 선입견이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의 결과물에 스민 그런 편견을 찾아내 다른 연구자들한테 경고음을 울리는 일 또한 과학 활동의 하나이기도 하다.

지난 2009년에는 뇌영상(fMRI) 기법을 사용하는 뇌와 마음에 관한 연구들에서 남녀 차이에 관한 고정관념이 뇌영상 데이터의 처리와 통계분석 설계에 반영될 수 있다는 논문이 발표돼 학계에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때에 머나먼 한국의 기자가 요청한 이메일 인터뷰에 선뜻 응해준 논문의 제1저자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연구원은 편견이 은연중에 작용할 때 “의미 없는 신호가 선별돼 편향된 추론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무래도 편견과 선입견은 특히나 해석이 중요한 분야에선 경계 대상인데, 이런 지식 내부의 편향이 실험 활동 중에 일어날 수 있다는 반성도 근래 들어 높아져 눈길을 끈다. 그중 하나가 수컷 실험동물을 주로 이용하다 보니 질병에 대한 이해가 남성 중심으로 기울어 신약 개발에도 여성 질환의 특성이 소홀히 다뤄진다는 주장이다.

최근에 관련 소식들이 잇따라 들려온다. 먼저 눈에 띈 것은 지난달 29일 캐나다 신경생리학 연구진이 과학저널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인데, 실험용 쥐를 암수 구분해 실험했더니 암컷에서 만성통증이 발현되는 신경 경로가 수컷의 경우와 다르게 나타났다는 게 요지였다. 같은 약물이 수컷에선 알려진 대로 통증 경로를 억제했으나, 암컷에선 다른 경로로 우회해 억제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동물실험의 결과를 곧바로 사람 몸에 적용해 해석할 수 없고 후속 연구도 이어져야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이런 결과는 남녀의 통증 경로에 민감한 차이가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었다.

신약 개발에서 ‘양성 균형’은 약물 반응의 민감도가 남녀별로 다르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1993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임상시험에서 남녀 균형을 맞추도록 한 규정을 만들면서 주목을 받았다. 어떤 약물에선 남녀별 반응의 민감도가 다르고 부작용도 다를 수 있다는 여러 결과도 보고됐다. 특히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과 관련한 영역에서 민감도 차이는 부각되었다.

이어 신약 개발에 앞선 기초연구인 동물과 세포 실험에서도 반성이 일어났다. 관리하기 편한 수컷 동물을 실험에 많이 사용하다 보니, 이렇게 해서 얻은 실험 결과가 신약 개발 단계에서 남성 중심적인 약물 개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엔 수컷 동물과 세포를 주로 쓰는 기존의 실험 결과들에 남성 편향이 나타난다는 연구논문이 나오기도 했다.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이런 반성과 우려가 실험 관행도 바꿔 나갈 모양이다. 이미 지난달 미 국립보건원이 실험용 척추동물과 세포를 대상으로 실험할 때 양성 균형을 맞추는 실험 설계와 데이터 수집·해석 계획 등을 밝히도록 권고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달 초순엔 미국 여성건강연구학회와 내분비학회가 미국 의회에서 왜 양성 균형 실험이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행사를 열었다고 한다. 이들은 따로 자료를 내어 “생물의학 연구가 과학적 발견과 혁신적 의학을 이끌고 있지만 대부분 실험에서 여성과 소수자는 실제보다 적게 대표되고 있다”며 “과학자들은 전임상 연구에서 남녀 균형을 맞추고 소수자 집단도 대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성평등’이라는 사회적 요구와 더불어, 신약 개발의 전초인 동물과 세포 실험에서는 ‘양성 균형’이라는 과학 내부의 요구를 새롭게 맞이하고 있다.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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